최대 80% 할인…백화점 명품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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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불황으로 인한 소비 위축에 ‘명품불패’의 신화도 깨졌다. 지난달 백화점 세일 때 마이너스 성장까지 몰리게 되자 고가의 해외 브랜드마저 자존심을 접고 재고떨이에 나섰다.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은 오는 15일부터 역대 최대규모인 총 850억원어치의 명품 재고 할인판매 행사를 잇따라 연다. 할인율은 최고 80%까지 치솟고 평소 행사장에서 볼 수 없던 콜롬보 등 초고가 브랜드까지 등장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캐주얼슈즈 우대가 43만8000원, 돌체앤가바나 청바지 우대가 41만5000원…’.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15~17일 ‘해외명품대전’을 앞두고 발송한 우편광고물(DM)이다. 브랜드마다 대표 상품 사진을 싣고 할인 가격을 명시했다. 기존의 명품 할인행사 광고물에서는 볼 수 없던 파격이다. 지금까지 명품 브랜드들은 브랜드별 할인율조차 광고물에 싣지 않았었다. 행사 참여 브랜드 수십 개를 나열하고 30~60%라고 표기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반 의류브랜드의 저렴한 기획상품전 DM과 유사한 광고물을 보낸 것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불황 때문에 명품 브랜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제안했는데 선선히 응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 백화점의 경우 2011년 23.3%였던 명품 매출 성장률이 지난해 6.4%로 뚝 떨어졌고, 지난달 세일 기간에는 매출이 11.3% 뒷걸음쳤다. 신세계 본점은 명품대전을 지금까지 6, 9, 10층 3개 층에서 진행했지만 올해는 1층 한가운데 행사장까지 내줬다. 지난해보다 50% 늘어난 300억원어치, 50여 브랜드를 최대 80% 할인 판매한다.

 최대 규모로 명품 할인 행사를 벌이는 곳은 롯데백화점이다. 본점에서 22~24일 75개 브랜드 제품 400억원어치를 판매한다. 미국드라마 ‘섹스앤드더시티’에 단골로 등장했던 구두 브랜드 지미추, 캐시미어 스웨터 한 벌에 300만원씩 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브루넬로쿠치넬리, 수천만원대 악어백으로 유명한 콜롬보 등 평소 할인행사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초고가 브랜드들까지 등장했다. 지난해에 볼 수 없었던 럭셔리 슈즈 브랜드 이리스(IRIS), 라콜렉시옹과 고급 패딩 브랜드인 페트레이, 피레넥스도 “최대 물량으로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불황으로 인한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해 예년에는 명품 할인행사를 꺼리던 브랜드들까지 적극적으로 백화점 측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할인율도 예년에는 30~70%였지만 올해는 80%까지 올랐다. 평소 30~50% 할인하던 발리·케이트스페이드는 최고 70%까지 할인한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도 15~17일 지난해보다 50% 이상 규모를 키워 질샌더·멀버리·닐바렛 등 30개 브랜드, 150억원어치를 판매한다. 행사장 규모도 네 배 넘게 늘렸다. 올해는 처음으로 2월 행사에 봄·여름 상품까지 등장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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