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편견 박차고 나온, 세 편의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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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왼쪽부터 쇼트트랙 김현지, 스노슈잉 손영광, 플로어하키 안성웅.

편견은 벽이다. 미국 출신 배우 겸 시인 마야 안젤로(85)는 이렇게 적었다. “편견은 과거를 왜곡하는 동시에 미래로 향해 가는 우리를 위협하는 일종의 벽이다. ” 지적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중 하나는 사회 적응력이 떨어질 것이란 점이다. 평창 스페셜올림픽 경기장에서 만난 선수들은 이런 편견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2013 평창 스페셜올림픽에서 만난 부모와 코치들은 “지적장애인 선수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만든 원동력은 운동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빙상에서 배운 집중력=1일 강릉 실내빙상장에서 만난 김현지(21)씨는 3년차 직장인이다.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1500m에 출전한 김씨는 매일 오전 8시 경기도 수원에 있는 삼성SDS ICT센터 헬스장으로 출근한다. 그녀는 2010년 11월 삼성SDS의 자회사에 입사했다. 한동안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잤다.

 삼성SDS에서 김씨는 인기 헬스 트레이너다. 말은 약간 서툴지만 제대로 된 자세를 몸으로 보여준다. 특히 헬스를 시작하는 사우들이 좋아한다. 지적장애 3급인 김씨는 중학교 때까지 비장애인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자폐증상까지 겹쳤다. 2009년 빙상을 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스케이트를 신은 지 1년 반 만인 2010년 한국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500m에서 우승했다. 이어 경기도 장애인빙상대회 500m와 1000m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미끄러운 빙판에 적응하기 위해선 집중력이 필수다.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 중엔 또 다른 ‘삼성맨’이 있다. 500m에 출전한 권삼웅(25)씨다. 권씨는 삼성전자 자회사인 ‘행복을 만드는 집’에서 일한다.

 ◆농구에서 깨우친 사회성=이날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경기장엔 비가 내렸다. 스노슈잉 400m 예선경기에 출전한 손영광(22) 선수가 출발 신호와 함께 내달렸다. 코너 중반부터 힘이 떨어진 손씨는 처지기 시작했다. 등수는 뒤에서 두 번째.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번 스페셜올림픽에 참여하기 위해 휴가를 냈기 때문이다. 지적장애 3급인 손씨는 강원도 춘천에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에서 일하는 정직원이다.

 손씨는 어린 시절엔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 사회성을 찾기 시작했다. 손씨를 지도한 김덕영 감독은 “영광이는 특수학교에 입학한 뒤 운동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건강과 성격이 좋아진 사례”라며 “볼링·농구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알아갔다”고 말했다.

 ◆하키에서 배운 지구력=관동대 체육관에서 만난 플로어하키 1호 선수 안성웅(21)씨의 어머니 문정남(52)씨는 “아들이 절대로 직장생활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운증후군인 안씨는 지난해 7월부터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프린터 토너 재생 기업 JKOA에 일한다.

어머니 문씨는 아들이 취업한 후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 문씨는 “까만 토너를 입에 묻힌 채 퇴근을 할 때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러면서 “길면 한 달 정도 다닐 것으로 봤다”고 했다. 아들은 예상을 깨고 7개월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휴대전화 알람을 맞춰 놓고 매일 아침 6시30분에 혼자 일어나 마을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문씨는 “2009년 시작한 하키가 아들을 바꿨다”고 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보통 근력이 약하지만 플로어하키를 배우면서 지구력이 좋아졌다.

 직장생활에 부정적이던 문씨는 최근 마음을 바꿨다. “지난 연말에 아들이 사탕 을 사달라고 해서 물어보니 회사에서 자기를 챙겨주는 형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지적장애 아이들에게 직장이 왜 필요한지 알겠더라고요.”

강릉=강기헌·김민규 기자, 평창=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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