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국가 인권위원회 첫날

중앙일보

입력

26일 많은 기대 속에 장관급 행정기구로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http://www.humanrights.go.kr).

종로구청 뒤 이마빌딩 5층에 자리잡은 사무실은 진정서 접수 첫날부터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붐볐다.

"공인중개사 시험 출제가 잘못되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상담을 요청한 허현씨도 그중 한사람.

그는 "지난 16일 실시된 중개사 자격시험에서 정답이 여러 개인 문제가 많고, 출제자 주관에 의해 답이 정해질 수 있는 문제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됐다"며 진정서 접수를 요청했다.

사무실 중앙에 칸막이로 구분된 상담실에서 11명의 인권위원들이 진정사항을 듣는 가운데 허씨와 만난 한 위원은 허씨의 진정접수 요청에 난처한 눈치였다. "인권위원회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라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덧붙인 설명은 이랬다. "검찰과 경찰, 교도소 등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행위나 여성과 장애인, 동성애자 등의 차별문제를 조사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이런 내용은 건설교통부에 호소해야할 일이다."

허씨는 이 같은 말을 듣고도 뜻을 굽히지 않는 듯했다.

"건설교통부, 청와대, 민주당, 행정심판위원회 등 알릴 수 있는 모든 곳에 알려 봤으나 모두 책임전가 뿐이었다.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왔다"며 접수를 요청했다.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은 허씨와 같이 인권위원회를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나름대로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여기저기 호소해봐도 들어주지 않아 이곳에 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호소들을 모두 받아주기에 인권위원회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일단 출범은 했으나, 정부와의 갈등으로 아직 조직안을 확정하지 못해 발로 뛸 직원들이 없는 것이다.

인권위는 직원 320명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규모가 너무 크다고 제동을 걸었다.

위원회측은 자격시험 출제 잘못을 지적한 허씨의 진정을 '넓은 의미에서의 인권문제'로 간주해 일단 접수했으나, 일 처리는 쉽지 않을 듯했다. 아직은 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상담과 접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계속 사무실로 몰려들었다.

오후 5시 20분. 업무 마감시간이 지난 때 불편한 걸음을 이끌고 사무실을 찾은 뇌성마비 장애인 최영수씨.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상속문제에서 차별을 받은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했으나 "내일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김창국 인권위원장은 "현재로선 조사인력이 없어 사실상 조사와 피해구제 활동이 불가능하다"며 "구금 피의자의 사망사건 등 긴급한 현안이 생겨도 당장 조사할 사람이 없어 안타깝고 죄송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큰 데 비해 정부의 이해와 지원은 부족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직 우리사회에서 '인권'의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고 '인권위원회'라는 기구도 체계가 잡혀있지 않지만, '문패만 달고 집안은 텅 빈' 인권위원회에서 희망을 본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는 기대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e-메일 주소: hoso@humanrights.go.kr
전화: 서울·경기 1331, 기타지방 02-1331
위치: 서울 종로구 수송동 146-1 이마빌딩 501호

Joins 오종수 기자 <joneso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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