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씨 신간 '장정5, 다시 대륙으로' 내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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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세기 격변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념에 관계없이 폭넓은 지지를 받아온 몇 안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김준엽(81.사진) 전 고려대 총장이다.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중국 현대사 전공의 역사학자, 어찌보면 이질적일 수도 있을 문무(文武) 의 조화와 균형이 우리 현대사에서 그를 독특한 인물로 특징지운다.

신간 『장정5,다시 대륙으로』는 현재 순수 민간학술단체 사회과학원의 이사장인 그의 회고록 시리즈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다. 1985년 권력에 의해 총장직을 강제 사퇴 당한 이후부터 구상하고 집필해 온 첫 권 『장정1, 나의 광복군 시절』이 나온 지 14년 만이고,넷째권이 출간된 지는 10년 만이다.

이번 5권의 부제 '다시 대륙으로'는 총장사퇴 이후 한.중 학술문화교류와 해외 한국학 연구를 적극 지원해 온 그의 삶 후반부를 표현한 제목이자 미래 중국의 역할 증대를 줄곧 주장해온 그의 지론을 함축한 표현이다.

그래서 그런지 5권은 광복군 시절과 고대 총장시절 등을 다룬 앞 책들에 비해 다소 밀도가 덜하고 박진감이 부족하기도 하다.

또 5권에선 평교수 시절의 삶도 주요 테마로 다루고 있기에 그가 36년간 몸담은 고려대학교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일상과 역사가 많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부모가 자식에 대한 애정과 자랑을 과장하는 것은 물론 어색하지만, 36년간 몸담은 고대에서의 일들을 자랑스럽게 말함으로써 후학들에게도 더 잘하라고 격려하는 뜻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서 개인의 삶과 사회와 역사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이 회고록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책으로 꼽을 만하다.

그의 삶은 크게 4단계로 분류된다. 광복군 시절과 평교수 시기, 그리고 대학총장 재직과 현재의 사회과학원 시기다. 광복군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일은 그의 평생을 좌우하면서 그에게서 항상 웅혼한 기개를 느끼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해방이 되고 정치권에 합류할 수도 있었지만 학문과 교육으로 일생을 살겠다는 원력을 세운 이후 한 번도 외도를 하지 않은 점은 그를 지조있는 선비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러한 삶의 원칙은 고려대 총장 이후 지금까지 대학과 해외학술교류 행정가로서의 삶에 무게를 더하며 실패하지 않는 추진력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그의 좌우명 가운데 하나인 "일은 사람이 한다. 사람은 유능해야만 큰 일을 할 수 있다. 유능한 사람들이라도 힘을 합쳐야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에서 '유능한 사람들의 힘을 합치게 할 수 있는'리더의 도덕성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광복군의 기개와 선비의 지조, 다시 말해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인 도덕성이 학자로서 또 행정가로서의 업적보다 더 상위의 가치에서 그를 평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5권에서 고대 총장을 사퇴할 때 학생과 교수들이 함께 "총장사퇴반대"시위를 3개월간 벌인 일과 졸업식장에서 학생대표가 "총장님 힘내세요"라고 한 말을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로 특별히 여러차례 강조하고 있다. 이는 독재정권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수차례 고위 관직 제의를 고사하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갈 수 있는 우직함으로 작용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의 좌우명으론 일생을 좌우한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역사의 신을 믿으라.정의와 선과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회고한다. "나는 일생 동안 무슨 크게 값어치 있는 일을 이룩한 것은 없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았고 크게 후회하는 일은 없었다"고. 밋밋할 수도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식민지와 급격한 산업화,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극심한 대결 등 숨가쁘게 전개된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생각하면 '크게 후회하는 일 없이'살았다는 그 자체가 역설적으로 대단히 '값어치 있는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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