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솔 바람 부는 은행 짝짓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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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출범한 통합 국민은행(옛 국민은행+주택은행)의 파괴력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자 중견 시중은행들도 짝짓기로 살아남을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20일 한 강연에서 "올해 안에 합병을 발표하는 은행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국민은행(자산 1백85조원).우리금융지주회사(자산 1백1조원)와 견줄 제3의 대형은행이 출범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특히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측이 지난 9월 하나은행 등 몇몇 은행에 합병을 타진한 것으로 확인돼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 체력 한계를 느끼는 중견은행들=통합 국민은행의 출현에 초조한 곳은 신한(자산 57조원).하나(51조원).한미은행(34조원)등이다.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국민은행이 개인과 중소기업 시장에서 상대 은행을 찍어내겠다고 작심하면 버티기가 버겁다는 점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국민은행이 세 은행 중 한 곳을 집중 공략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연간 순이익(1~9월 1조6천여억원)의 10%인 2천억원을 포기하고 금리를 1%포인트 우대하는 것만으로도 20조원의 핵심 고객 자산을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것.

뉴브리지캐피털이 인수한 제일은행도 자산이 40조원대에서 27조원으로 줄어 국민은행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기 힘겨운 실정이다. 행장을 바꾸고 여.수신 정책에 변화를 꾀한 것도 국민은행의 출현에 따른 대응이란 측면이 있다.

공적자금을 받은 조흥.서울은행과 현대 사태로 발목이 잡힌 외환은행 등도 국민은행의 공격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었다가 외환위기를 전후해 혼쭐난 은행들은 앞다퉈 소매금융을 늘리고 있지만 독과점적 지위인 국민은행 앞에선 '도토리 키재기'격이라는 게 금융계의 지적이다.

◇ 합병과 독자생존 사이=움직임이 가시권에 들어온 곳은 제일은행이다. 특히 제일-하나의 조합이 유력시된다. 제일은행의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은 당초 증시에 다시 상장한 뒤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투자자금을 조기 회수하기 위해 우량은행과의 합병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은행은 국민.신한.한미은행 등에도 합병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로버트 코헨 행장은 21일 "합병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는 또 신한은행과 한미은행이 다른 하나의 합병 축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주회사 형태를 갖추긴 했지만 기존 금융 계열사를 합쳐놓은 것일뿐 덩치면에서는 여전히 열세다. 한미은행도 대주주인 칼라일이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합병을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두 은행이 합쳐질 가능성도 있다는 금융계의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합병 움직임이 크게 두 군데서 감지된다"고 말했다. 제일은행과 신한.한미은행의 두축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허귀식.서경호 기자 ksl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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