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 심리학] 7. 거장들의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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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작품을 완벽한 기술로 소화해내는 연주자를 보면 정말 놀랍고 존경스럽다.

하지만 '제2의 창작'인 해석의 차원으로 진입하려면 악보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렇지 않다면 음악대학은 문을 닫아야 하고 음악회에도 갈 필요가 없다.

컴퓨터에 악보를 입력하면 어떤 소리든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터치와 박자가 정확해도 이는 재미없고 무표정한, 음표의 기계적 나열일 뿐이다. 뭔가 생동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장들의 연주가 감동을 주는 것은 악보에 담겨 있지 않은 음악적 표현이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같은 작품으로 수많은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해석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평범하고 밋밋한 연주로는 악보의 이면에 담긴 거시 구조를 담아낼 수 없다.명연주란 단순한 테크닉 차원을 넘어서 강약.음높이.음색.빠르기 등을 조절해 실타래처럼 얽힌 작품의 구조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음악평도 결국 연주자의 해석이 작품의 논리에 부합되는지를 따져 묻는 작업이다.

피아니스트들은 악구의 끝부분에 이르면 '점점 느리게(rit.) '라는 악상기호가 없어도 속도를 늦추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단락의 출현을 예고하는 무의식적인 표현 수단이다.

또 여러 개의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경우에도 선율 파트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음보다 0.2~0.5초 더 빨리 연주한다. 컴퓨터로 현악4중주곡을 연주하면 각 악기의 선율이 명료하게 들리지 않는다.

극단적인 템포 루바토나 과장된 해석이 연주자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틀림없다. 음반산업이나 매니지먼트사에서 이러한 '일탈'을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 말러 교향곡 제2번 '부활'은 지휘자에 따라 연주시간이 짧게는 71분, 길게는 99분까지 걸린다.

하지만 해석의 자유도 작품의 논리를 벗어나면 설득력을 잃고 음악과 관련없는 볼거리로 전락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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