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이명희 '코트의 날쌘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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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배구 대표팀 김철용 감독은 제3회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컵 대회 참가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구민정·장소연·강혜미 등 주축선수 3명이 빠졌고, 호흡을 맞출 훈련도 부족했기 때문에 '1승이나 하면 다행'이라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감독의 우려는 '날쌘순이' 이명희(23.현대건설.사진)가 합류함에 따라 기우로 끝났다.

이선수는 지난 8일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고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한 터라 김감독은 이선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3일 난적 미국과의 1차전에 투입된 이명희는 전력의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선수의 득점은 비록 5득점이었지만 활약상은 기록지에 나타난 것 이상이었다.

세터 김사니(한국도로공사)가 전위로 나갈 때 라이트로 투입돼 코트 좌우를 뛰어다니면서 미국 장신 블로킹 벽을 교란시켰다.

마치 잽을 날리듯이 뛰어난 반사신경을 이용한 감각적 블로킹과 빠른 몸놀림으로 톡톡 끊어 치는 속공으로 미국팀을 괴롭혔다.

2세트부터 미국의 레프트 테레스 크로퍼드가 타점 높은 스파이크를 뿜기 시작하면서 리베로 구기란(흥국생명)의 리시브가 잠시 흔들렸지만 악착같이 공을 쫓아가 살려내면서 사기를 북돋우기도 했다.

4세트에서는 자칫하면 역전될 수 있는 14-13의 위기상황에서 결정적인 서비스 에이스 2개를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실낱 같은 리드를 지켜냈다. 이선수는 이날 경기의 흐름을 재빨리 읽어내고 재치있는 몸놀림으로 그 흐름을 이끌어가거나 끊어줬다. 경기 후 김감독은 "수훈갑은 이명희"라고 치켜세웠다.

이선수는 센터인 이윤희(LG정유)가 미국전에서 오른쪽 무릎 인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14일 일본전부터는 원래 포지션인 센터로 돌아갔다.

그동안 1년 후배 이윤희에게 밀려났다는 자격지심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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