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사소한 일상이 만드는 위대한 변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이수경
한국P&G 사장

연초를 맞아 기업이나 개인 모두 각자의 계획을 세우고 다짐한다. 매년 아쉬운 점은 올해 계획이나 다짐이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혹시 너무 거창하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너무 큰 계획을 세우고 하루아침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매일 일상에 충실하고 변화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일상’을 평범하게 여기며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하루 일과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동일한 시간에 출퇴근해 평소에 해왔던 것처럼 업무를 본다. 우리의 선택과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상의 작은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출근하면서 별생각 없이 건넨 “오늘 스타일 좋은데”라는 인사 한마디가 좋은 하루의 출발을 돕고 직장 동료에게 큰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

 개인뿐만 아니다. P&G는 기업 차원에서 일상의 작은 변화를 중요시한다. 실제로 세계 최초로 선보였던 많은 제품을 되짚어 보면 작은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경우가 많았다. 손자의 헝겊 기저귀를 갈아주는 데서 불편함을 겪던 할아버지가 최초의 일회용 기저귀 팸퍼스를 개발했고, 뭉툭한 일자 면도날 때문에 매일 상처를 입었던 한 남자의 일상에서 최초의 안전면도기 질레트가 태어났다. 칫솔모 끝의 파란 부분이 사라지며 칫솔 교체 시기를 알려주는 오랄비 인디케이터 역시 칫솔 교체 주기를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것을 보완해 보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오게 됐다.

 “전 세계 소비자의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최상의 품질과 가치를 지닌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한다”는 거창한 목표 뒤에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일상의 작은 변화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업무 중 소비자를 만날 때에도, 혹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스스로 소비자가 되는 순간에도 늘 어떻게 하면 우리 제품으로 소비자의 생활에 변화를 선사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탁력이 좋은 세제를 만드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의 일상에 작은 변화와 기적까지도 불러올 수 있다. 하얗고 말끔하게 세탁한 셔츠를 입고 반장선거에 나간 아이는 좀 더 자신감 있게 자기 소견을 발표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섬유탈취제는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을 꺼렸던 소비자들이 걱정 없이 원하는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한다.

 이러한 관심과 노력이 소비자의 일상을 변화시켜왔고, 지금도 혁신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거대한 담론만큼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일상 그 자체도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 기업들이 올해 경영 목표를 연달아 발표하고 있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이 빠지지 않는 화두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감한 설비 투자, 연구개발(R&D) 조직 확대, 뼈를 깎는 내부 혁신, 외국 우수 인재 영입과 같은 전사 차원의 혁신을 위한 노력도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다. 그만큼 많은 기업이 혁신에 목말라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작은 아이디어, 작은 변화에서부터 온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혁신은 사무실이나 연구실 밖에서 이뤄졌다. 혁신의 대명사 구글의 대표적 서비스인 지메일, 구글 뉴스 등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0% 시간제’를 통해 탄생했다. 정교한 리서치와 골치 아픈 밤샘 개발을 강요하는 대신 업무 시간의 20%를 개인의 관심 영역에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주었더니 의외로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나온 것이다.

 우수한 인재는 자신이 어떤 가치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세상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항상 고민한다. 기업은 이들이 공감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원 각각이 일상에서 이 비전에 몰입하고 그 비전에 맞게 일상에서 변화의 씨앗을 찾아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거창하게 ‘10㎏ 감량’을 새해 목표로 삼는 것보다 ‘매일 10분씩 더 걷기’가 더 효과적인 것처럼 ‘혁신을 통한 10% 성장’을 기업 목표로 내세워 큰 그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드는 방법, 직원들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기업 문화에 대한 고민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이수경 한국P&G 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