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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꿈 접은 어느 동성애자 … 소수와 다수, 골은 깊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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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 대선에서도 동성애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피 용어였다. 동성애에 대해 “합법화에 반대한다”(박근혜 캠프)거나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문재인 캠프)며 손사래를 쳤다. 워낙 뜨거운 감자인 데다 표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소수자’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며칠 전엔 동성애자 캠프에서 열리는 간담회 참석자로 예고됐던 야당 의원들이 “난 거기 안 간다”며 줄줄이 부인하는 풍경도 빚어졌다.

 그러나 사회적인 공론화마저 일반의 편견이나 종교적 신념에 가로막혀 아예 시도조차 되지 않는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 잘못된 선택인 자살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지난 7일 세상을 등진 육군 A일병(24)의 사례는 성적 소수자가 겪는 많은 비극 중 하나로 기록돼야 할 듯하다. 충남의 육군 모 부대 소속 A는 지난해 12월 정기휴가를 갔다가 예정보다 하루 늦게 복귀했다. 그리고 11일 뒤 부대 보일러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저는 부끄러운 죄인입니다. 미래의 죄를 덜기 위해 하루라도 숨을 일찍 거두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A는 해외유학을 다녀 온 엘리트 청년이었고, 성직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군 상담기관과의 면담에서 성 정체성을 밝혔지만 그런 사실이 꿈을 이루는 데 장애가 될까 봐 고민이 무척 많았다 한다. 국방부의 ‘부대관리 훈령’은 ‘동성애 병사의 복무’(6장) 편에서 세세하게 명시하고 있다. 차별하지 말아야 하고, 사생활 관련 질문을 금지하며, 각종 서류에 동성애 사실을 기록하거나 유출할 수 없다. 본인 동의 없이는 누구도 부모·친구·부대에 사실을 알릴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조기 전역도 가능하다. 아직까지 군이 규정을 현저히 어긴 흔적은 없어 보인다.

 A는 게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평생 번민한 가톨릭 신부 헨리 나웬(1932~96)과 유사한 처지였을까. 이제 와서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베스트 에그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7명의 영국 남녀 노인이 멋들어진 광고 문구에 속아 여생을 인도의 낡은 호텔에서 보내려다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7명 중 게이인 전직 판사 그레이엄은 젊은 시절 사귀다 헤어진 인도인 파트너(마노이)와 재회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 꿈이 이루어진 다음 날,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다. 한국의 청년은 너무 젊디젊은 나이여서 마음이 아프다.

 다른 분야 이상으로 성 정체성에선 다수와 소수 사이의 골이 매우 깊다. ‘베스트 에그조틱…’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결국엔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아직 때가 아닌 것이죠.” 많은 소수자들이 지금 이 말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