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발언 청와대 불쾌… 盧측선 관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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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북 비밀지원 의혹에 대해 "현 정부가 털고 가야 한다"는 문희상(文喜相)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의 발언이 정치권에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노무현(盧武鉉)당선자 측은 文내정자의 발언이 당선자의 뜻과 무관하다며 파문의 확산을 경계했지만 한나라당은 반색하며 여권을 압박하고 나섰다. 청와대 측은 내심 불쾌하다는 반응이어서 文내정자의 발언을 계기로 신.구 정부 사이에 미묘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상황을 지켜보자"=盧당선자 측은 16일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론 입을 닫았다. 전날 "당선자의 뜻과 무관하다"고 해명했던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은 별도의 추가 발표를 하지 않았다.

신계륜(申溪輪)당선자 비서실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文의원 개인의 생각에서 나온 발언이라 언급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반응과 별개로 당선자 측에선 "할 수 있는 얘길 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감지됐다. 특히 일부에선 文내정자의 발언이 盧당선자가 후보 시절에 했던 "의혹이 있다면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현)대통령이 필요하다면 말해야 한다"는 발언과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새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뒤 원만한 국정 운영과 대야 관계 등을 고민했을 文내정자가 발언의 파문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선자 진영은 앞으로 이 발언이 몰고올 정치적 상황 변화에 더 관심을 보이는 눈치다. 당선자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특검제 도입 등에 대해 부인하면서도 "상황을 좀 지켜보자"고 말했다.

◇불쾌한 청와대=문제는 청와대 측의 반응이다. 박선숙(朴仙淑)대변인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면서 언급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 기류는 대부분 불쾌하다는 쪽이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사실이 아닌 얘기를 가정을 전제로 말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고 단정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파문이 일더라도 말한 쪽에서 풀어야 할 게 아니냐"고 했다. 동교동계 해체 등 盧당선자 측을 배려한 청와대의 조치들을 거론하며 "너무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당 개혁 등을 놓고 갈등하는 민주당 신.구주류 간에도 반응이 달랐다.

이날 발족식을 한 열린개혁포럼 소속 한 의원은 "당선자 측 입장을 감안할 때 할 얘기를 한 것"이라고 한 반면, 구주류 측 의원은 "신중하지 못했다"고 했다.

◇호재 만난 한나라당=여권 내부에 형성되기 시작한 이런 난기류와는 반대로 한나라당은 적극 공세에 나섰다.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선 호재라는 반응이다. 신.구 정부를 분리 대응하려는 입장도 감지됐다.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대표는 "文내정자의 얘기는 옳은 말"이라며 "4천억원 뒷거래설을 규명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특검과 국정조사를 수용하면 외국의 관행처럼 새 정부에 6개월간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이슈화함으로써 여당을 압박하고 당 내부의 결속도 다지겠다는 의도 같다.

이규택(李揆澤)총무는 국회 운영과 연계할 뜻도 내비쳤다. 李총무는 "4천억원 대북 비밀지원 의혹과 공적자금 비리.국정원 도청 문제 등에 대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오는 22일로 예정된 국회 일정도 불투명하다"고 경고했다.

박승희.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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