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청와대서…" 朴, 업무보고 불참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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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보기가 쉽지 않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 사무실에 나온 것은 7일 전체회의 때가 마지막이다. 11일부터 시작한 대통령직 인수위의 정부 부처 업무보고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인수위에 종종 나와 업무 상황을 챙겼다. 당시 이 당선인이 인수위 회의에서 대불공단의 전봇대 문제를 거론하자 이틀 뒤 한전 직원들이 비 오는 날인데도 출동해 전봇대를 뽑았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이번에 박 당선인은 정부 업무보고가 다 끝나고 국정기획조정분과에서 종합보고서(이달 하순)를 제출하기 전까진 인수위 업무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관례적으로 해왔던 대통령 당선인의 신년회견도 이번엔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각각 2002년 12월 31일과 2008년 1월 14일 신년 회견을 열어 국정운영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은 11일 “신년회견을 할지 안 할지 확정되진 않았지만 현재까지 회견을 준비하는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외부 일정도 민생 챙기기 행보 이외의 정치적 행사나 개인적 모임 등엔 일절 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고려대 교우회 신년교례회에 갔고, 소망교회에서 당선 감사예배를 봤던 것과는 딴판이다.

 박 당선인의 한 측근은 “인수위를 철저히 낮은 자세로 실무형으로 끌고 가겠다는 구상의 연장선상”이라며 “박 당선인은 아직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자기가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측근은 “박 당선인은 대통령 개인이라기보단 대통령직(presidency) 자체에 대한 존중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며 “어려서부터 청와대에서 자랐던 개인적 배경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총선 공천의 여파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의 관계가 무척 껄끄러웠던 2009년 초. 한 원로급 인사가 박 당선인에게 “맨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기자들을 만나 쫓기듯이 말씀하는 게 영 보기 좋지 않더라.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여는 게 어떻겠느냐”고 건의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제가 얘기를 하게 되면 국민들이 혼선을 일으키게 되고 대통령도 불편해하지 않겠습니까”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여당 소속인 만큼 더욱이 대통령의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종시 문제로 청와대와 정면으로 맞붙었을 때도 박 당선인이 직접 이 대통령을 거명해 비판한 적은 없다.

 지난해 대선 때도 캠프 일각에서 야권후보 단일화 바람에 맞서기 위한 카드로 ‘러닝메이트 총리론’을 꺼낸 적이 있다. 박 당선인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참신한 인사를 골라 당선되면 총리로 기용하겠다고 발표하자는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거지 대통령 후보가 지명하는 게 아니잖아요”라며 일축했다고 한다.

 박 당선인이 목소리를 낮추고 있어서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청와대와 인수위가 마찰을 빚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인수위 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인수위는 호통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하자 인수위 측이 “매우 적절치 못한 말씀”이라고 반박하면서 충돌하기도 했다. 당시 정권이 바뀌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인수위가 워낙 적극적으로 움직인 게 현직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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