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김병현 또...'뉴욕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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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여신은 가혹했다. 그리고 잔인했다. 스물두살 9개월의 낯선 이방인 청년이 이겨내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럽고 일방적인 분위기였다. 전날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상기된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은 씩씩하게 명예회복을 노렸으나 또 한번의 시련에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나 안타깝고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다. 두근거리는 어린 청년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양키스는 자정이 넘은 뉴욕의 밤공기 같았다. 냉정한 그들은 차가운 쇳덩이처럼 강했다.

뉴욕 양키스가 연장 12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3-2로 꺾고 월드시리즈 4연패에 1승만을 남겼다. 양키스는 2일(한국시간)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9회말 2사후까지 0-2로 뒤졌으나 다시 김병현을 희생양으로 기적을 연출했다.

9회말 2사 2루에서 마지막 타자로 여겨졌던 스콧 브로셔스가 왼쪽 담장을 넘기는 극적인 동점 홈런으로 김병현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렸고 연장 12회말 1사 2루에서 알폰소 소리아노가 끝내기 우전안타로 2루주자 척 노블락을 불러들였다.

다이아몬드백스는 5회초 스티브 핀리와 로드 바라하스의 홈런으로 2-0으로 앞섰으나 마지막 순간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9회말 마운드를 넘겨받은 김병현은 첫 타자 호르헤 포사다에게 2루타를 내줬으나 전날의 악몽을 씻어내려는 듯 후속 셰인 스펜서를 3루땅볼, 척 노블락을 삼진으로 잡아내 세이브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스콧 브로셔스에게 던진 2구째 몸쪽 직구가 위력없이 날아들었고 날카로운 브로셔스의 방망이가 일으킨 파열음은 비수처럼 김병현의 심장에 꽂혔다. 통한의 동점 홈런이었다.

다이아몬드백스는 11회초 1사 만루의 득점 찬스를 잡았으나 양키스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벽을 넘지 못해 점수를 뽑는 데 실패했고 결국 12회말 결승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2연승 뒤 3연패로 궁지에 몰린 다이아몬드백스는 3일 하루를 쉰 뒤 4일 피닉스에서 랜디 존슨을 내세워 6차전 승리를 노린다. 양키스는 앤디 페티트를 선발로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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