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주택’ 있다고 세금 폭탄에 각종 불이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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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저도 한때는 중산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언제 길바닥에 나앉을지 모르는 '빈민 예약자'가 됐네요.

<중앙일보> 1 8일자 ‘집에 묶인 74조 경제족쇄’ 기사를 보고 공감을 표시하며 이메일을 보내온 한 50대 독자의 말입니다.

주택 거래가 안돼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푸어’의 사연은 누구에게 들어도 참 구구절절 안타깝습니다. 대부분 큰돈을 벌겠다는 거창한 계획보다 주택시장 활황기 ‘들썩들썩’하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집을 샀다가 낭패를 본 경우더군요.

잠깐 집값이 치솟았던 2005~2007년 당시를 떠올려 봅시다. 부동산으로 수십억원을 벌었다거나, 부채를 이용한 소위 ‘레버리지 효과’(지렛대 효과·대출을 늘려 자기자본 이익을 높이는 것)로 부자가 됐다는 내용의 재테크 서적과 언론 보도가 넘쳐났습니다.

‘정말 이러다 평생 내 집 마련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팽배했죠. ‘남들은 집값이 올라 부자가 되는데 나만 이래서 되겠나’하고 열패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집을 샀던 사람이 이수암(54·가명)씨입니다. 2007년 분당 미금역 주변 161㎡형(이하 공급면적) 아파트를 9억원에 계약했죠. 전세(보증금 32000만원)를 끼고 중간 정산한 퇴직금과 기존 집을 팔아 마련한 3억원에 모자란 28000만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좀 무리하게 큰 집을 샀지만 당시 중대형 아파트의 인기가 컸기 때문에 노후대비용으로 생각했습니다. 10억원 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기대했죠. 상황이 좋아지면 대출을 조금 더 늘려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직접 들어갈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아파트값이 무섭게 떨어지자 모든 게 악몽으로 변했죠. 김씨는 집값이 8억원 초반으로 떨어진 2009년 말부터 집을 내놓았지만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아파트는 현재 65000만원에도 급매물이 나오지만 매수 문의조차 없습니다. 이 가격에 팔아봤자 전세보증금과 대출을 갚고 나면 5000만원밖에 남는 게 없습니다.

김씨는 “집이 팔리지 않은 사이 집값하락과 이자까지 4억원 손실을 봤다. 집과 퇴직금도 모두 날린 것”이라고 하소연 하더군요.

하우스푸어 58% 40~50대 중산층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무리한 대출을 통해 집을 마련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은 당시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중산층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연령대로 치면 40~50대가 913000여가구로 가장 많습니다. 전체 하우스푸어(1569000가구) 58% 정도입니다.

이런 사연을 전해주신 분도 있습니다. 과천에 사시는 50대 기경미(가명)씨라는 분입니다.

“이 시대의 총체적 난관이 우리 집에 다 모였습니다. 몇 년 전 사놓았다가 지금은 깡통주택이 된 아파트, 남편의 명예퇴직, 취직 못하는 대학생 둘, 사교육비에 등허리 휘는 고등학생 …어디서고 도움을 받을 수 없네요. 단지 무섭게 배달되는 세금고지서만 수북이 쌓일 뿐입니다.

기씨가 2007년 산 과천 아파트 109㎡형은 2009년만 해도 9억원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6억원까지 떨어졌죠. 38000만원이나 하는 전세보증금과 35000만원의 대출금을 해결하려면 집을 팔아도 1억원 이상 모자란 깡통주택입니다.

그런데 기씨는 매년 집이 한 채 있다는 이유로 재산세로 꼬박꼬박 100만원 이상 내고 있습니다.

기씨를 더 화나게 하는 건 재산세를 많이 낸다고 대학생 자녀가 한 재단에서 받을 수 있었던 장학금 혜택에서 배제되고, 집이 있다는 이유로 학자금 대출을 못받고 있다는 겁니다.

한때 잘못된 판단으로 집을 구입해 재산의 대부분을 날린 깡통주택 소유자인 것도 화나는 일인데, 이 주택 때문에 과도한 세금을 내야하고 정부의 각종 혜택에서 배제되는 것은 분명 억울한 일일 겁니다.

이들의 삶의 수준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안정적인 전세에 사는 무주택자보다 결코 낫다고 보기 어려운데 말입니다.

생활고 시달리는 깡통주택 소유자, 정부 혜택 거의 없어

국민은행 원종훈 세무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무주택자와 유주택자를 나눠 정부 정책을 차등 적용합니다. 각종 세금은 물론, 건강보험료, 청약자격, 양육비지원, 심지어 아이들 급식비까지 유주택자와 무주택자를 나눠 혜택을 주죠. 최근 집값 하락으로 유주택자이면서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하우스푸어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겠죠.

40~50대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 가운데 ‘마처세대’란 게 있습니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버림받는 처음세대’란 뜻입니다.

경기 침체에 명퇴를 앞둔 이들에게 집은 삶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무리해서라도 내집마련에 나선 건 그게 불안한 사회에 기댈 희망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마련한 주택의 가격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팔아서 장사 밑천이라도 마련하려 하지만 잘 팔리지도 않습니다.

부동산 거래세를 낮추는 등 각종 부동산 세금을 줄여야 한다는 건 더 이상 부자계층이나 한때 투기를 일삼았던 일부의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한 정부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고령화사회에서 마처세대가 신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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