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건축 부도 충격 … “건축 살길은 전문화” 한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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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 현대건축의 개척자 고(故) 김수근이 설계한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건축 사옥.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촬영지로 쓰이기도 했다. [사진 공간건축]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공간건축)’의 부도 소식에 건축계가 술렁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자조적 반응과 함께 향후 비슷한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는 어두운 예측이 나오고 있다.

 공간건축은 ‘주미 한국대사관’ ‘서울 올림픽주경기장’ 등을 설계한 건축가 고(故) 김수근(1931~1986)이 1960년 설립했다. 2011년 기준으로 매출액 296억원을 기록한 업계 6위권 업체다.

 하지만 부동산경기침체에 따른 설계 미수금 누적과 경영부실 등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지난 2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번 주 나올 법원의 결정에 따라 기업회생이나 매각 등의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설계사무소도 위험=현재 200여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린 국내 대형설계사무소는 삼우·희림·정림·창조건축 등 10여 곳에 이른다. 문제는 다른 회사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중 건축사무소 한 곳이 수주한 설계 건 수가 평균 세 건이 채 안 된다.

 사정이 악화되자 업체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공간건축도 2010년 경영·감리 쪽 인원을 대폭 줄였고, 한때 직원수가 1000명이 넘었던 희림건축도 2011년 직원을 100명 가까이 내보냈다. 한국건축가협회 관계자는 “공간건축이 위기라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다음 차례는 어느 회사가 될 것 이라는 설이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예견된 재앙=대형설계사무소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노무현 정부가 주도한 국가 균형발전정책 등으로 정부의 공공사업 발주가 이어졌고, 주택시장의 활황으로 아파트와 상업건물 건설도 증가했다. 설계사무소들은 대형사업을 따내기 위해 앞다퉈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공공건물 발주가 급격히 줄어들고, 아파트 시장도 냉각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설계사무소들은 외국으로 눈을 돌려 해외 사업을 공략했다. 하지만 글로벌 불황으로 설계비 회수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대형 업체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의 도입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활성화 등으로 설계사가 건설 경기와 금융 자본의 움직임에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가 됐다. 이런 구조의 취약성이 위기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계업계 양극화 해소를= 그나마 전문적인 영역을 구축한 설계사무소들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업계 5위권인 간삼건축의 경우 2012 여수국제박람회에 선보인 아쿠아리움에 이어 아시아 최대 규모인 제주 아쿠아플라넷 등 전문 분야에서 실적을 내면서 지난 연말 직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형사무소와 아틀리에 방식의 1인 업체로 양분화된 업계의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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