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수상자에게 듣는 영어토론 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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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토론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김운하(왼쪽)군과 홍경표군이 21일 “지금 인터뷰도 토론처럼 생각한다”고 말한 뒤 활짝 웃고 있다.

각종 영어대회가 열리는 겨울방학이다. 학기 중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실용 영어에 힘을 쏟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 유명 영어토론대회에서 수상한 김운하(서울 목일중 3)·홍경표(서울 을지중 3)군에게 영어토론 잘하는 비법을 들어봤다.

 홍군은 자신이 영어토론 ‘초보자’였을 때, ‘따라쟁이’였다고 회상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의 연설을 보면서 흉내 냈다고. 말투와 태도는 모방하면서 연설의 내용에는 자신의 생각을 입히자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했다. 홍군은 “연설 실력이 뛰어난 롤 모델을 정해서 따라만 해도 그럴 듯해 보인다”면서 “점점 내용에 자신의 논리를 집어 넣으면 자신도 훌륭한 연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군은 연설을 ‘읽기’도 했다. 영어 연설문 뿐만 아니라, 백범 김구 선생의 연설문 등 한글연설문을 보면서 논리적 전개를 살펴봤다. “머리 속에 글의 구성이 들어오자, 말도 논리적으로 하게 됐다”고 했다. 이 결과 지난해와 올해 한 언론사가 주최한 영어토론대회에서 상위권에 들었다.

 홍군은 매일 아침 CNN방송 뉴스를 본 뒤 등교한다. 이 중 몇 개 주제를 등굣길에 회상하면서 내용과 영어 표현을 기억한다.

 “전 지금 이 인터뷰도 토론을 한다고 생각해요. 기자님이 의장이고, 옆 친구(김군)가 같은 참가자이고요.” 홍군은 “이처럼 생활 속 여러 상황을 토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토론이라고 꼭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토론을 한다고 생각하고, 영어토론대회에선 친구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좋다”고 덧붙였다.

 홍군은 영어토론을 위해 배경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회 주제에 맞게 인터넷 검색을 해서 정보도 얻지만, 평소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대회 주제가 최근 이슈라고 해도, 근대사를 인용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군은 “말하는 기술보다 말하는 내용이 토론의 주제와 부합하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영어를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삼아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으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이런 배경지식을 영어 토론 현장에선 1%도 남기지 말고 100% 쏟아 붓는다”고 했다.

 홍군은 토론의 승패는 성공적인 ‘반론’이 가른다고 했다.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면 좋지만 상대가 주도권을 잡으면 역습의 기회도 생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이성적으로 듣다 보면 논리적인 허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때, ‘상대의 의견에는 5가지의 오류가 있다. 첫째는 무엇이고, 둘째는 무엇이다’와 같이 반박할 수 있다.
 
토론 연습 50번보다 대회 참가 경험이 효과

 올해 ‘민사고 영어토론대회’에서 최우수상(1등)을 수상한 김군은 평소 인문 서적을 즐겨 읽는다. “영어토론을 위해 요즘 이슈를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철학, 정치, 역사, 경제 등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해야 한다”고 믿어서다. 예를 들어 탈북자의 인권이 주제라면, 요즘 이슈와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이 왜 중요한지 철학적인 접근을 하면 내용이 더욱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김군은 중1 때부터 매일 아침 영어 신문을, 매일 저녁 영어 잡지를 읽는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단순히 찬반을 넘어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일종의 ‘관점 훈련’을 하라”고 조언했다. 영어토론에서 자기 주장의 축을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다른 의견에 대응하는 논리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군은 영어토론대회 당시를 회상했다. 주제는 ‘올림픽 선수들에게 정부가 지원금을 늘려야 하는가’였다. 상대 참가자는 “선수들이 꼭 금메달을 받을 보장이 없는데 왜 돈을 많이 줘야 하느냐. 아마추어 선수들은 차별대우를 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이에 대해 김군은 “그럼 아마추어 선수들은 더욱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희박하다. 금메달을 딴다는 보장이 있어야 꼭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하고 반박했다.

 김군은 “영어토론 중 상대가 말을 비꼬는 등의 무례한 행동을 해도 절대 흥분하면 안 된다. 냉정을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수치 등을 활용하면서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참가자들에게는 주눅이 들 수도 있다”면서 “개의치 말고 자신감을 갖고 소신껏 말하라”고 말했다.

 김군은 “영어토론이 영어적 사고력과 상상력을 길러준다”고 했다. 영어 문장을 자유롭게 변형시키고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다양한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과 토론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훈련도 해보세요. 그리고 영어토론 연습 50번보다 실전 대회 참가 경험이 큰 자산이 돼요.”

 두 학생은 “꼭 영어토론뿐만 아니라, 토론이 생활화되면, 우리 생활에서 분쟁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입을 모았다.

청담러닝 학원사업본부 오명경 상무가 말하는 영어토론대회 실전

① 팀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발표에 활용하라=같은 팀원들의 의견을 관통하는 하나의 기조가 있어야 한다. 선거 때 정당이 캐치프레이즈를 내거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래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팀원들이 각자 의견을 말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그 캐치프레이즈를 이야기하거나 떠올리게 하면 된다. 그런 기조가 밑바탕에 없으면 각자의 의견이 중구난방이 될 수 있다.

② 팀원들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하라=팀원 각자가 갖고 있는 장단점을 잘 파악해 역할을 안배하고, 말하는 순서를 정한다. 매끄럽게 연설을 잘하는 사람은 기조연설을, 반박을 잘하는 사람은 반박과 주장을 맡는다. 또 의견을 종합하고 조율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우리 팀과 상대 팀의 의견을 종합해 말하는 역할을 맡는 식이다.

③ 빨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명확히 의사를 전달해라=제한된 시간은 사람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 빨라진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자. 속도를 조절하고, 말에 강약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핵심 메시지는 강하게 말하고 부연 설명은 부드럽게 말할 수 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모두 같은 톤이라면 전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④ 무대 위의 배우처럼 발표하라=바디 랭귀지를 적절히 활용하고, 쇼맨십이 있어야 한다. 뛰어난 연설가들은 자신의 상체를 적절히 잘 활용한다. 이야기에 맞게 손을 드는 식이다. 지루함에서 벗어나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이 때, 내용과 잘 맞아 떨어지는지, 자연스러운지가 중요하다. 과도한 쇼맨십이 자칫 이야기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⑤ 지속적으로 아이컨택을 하라=긴장한 나머지 허공을 보거나 한 곳만 응시하며 말할 수 있다. 청중이나 심사위원을 돌아가면서 골고루 쳐다보자.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말하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이컨택은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⑥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라=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는 것은 기본. 반복을 잘해야 이길 수 있다. 영어토론은 관점과 관점의 대결이다. 집중해서 듣다보면 논리의 비약이나 허점이 반드시 보인다. 이를 지적하면서 틀린 이유를 명확히 말하면 토론의 흐름을 장악할 수 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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