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미국 슈워츠코프 장군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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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슈워츠코프

‘사막의 폭풍’이 잠들었다. 1991년 1차 걸프전에서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 27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탬파 자택에서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78세.

 그는 은퇴 직후인 93년 전립선암을 앓았으나 완치된 상태였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의 진수를 잃었다”며 “우리는 베트남전부터 걸프전에 이르는 그의 리더십을 기억할 것”이라며 조의를 표했다.

 34년 뉴저지주 트렌턴에서 태어난 슈워츠코프는 육군장교이자 경찰서장을 지낸 부친의 뒤를 이어 56년 미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남캘리포니아대에서 기계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66년 베트남 전쟁에 자원해 월남군 공수부대 군사고문을 맡았다. 당시 2도 화상 등 부상을 입기도 했으나 공로가 인정돼 훈장을 받았다.

 불같은 성격으로 ‘폭풍 노먼’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는 걸프전 당시 30여 개국으로 구성된 다국적군 사령관으로서 이라크군이 점령한 쿠웨이트를 작전 42일 만에 탈환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헬리콥터와 전차 등으로 위장 기지를 만들고 무선으로 거짓 정보를 흘려보내는 등 치밀한 작전으로 사상 처음 전 세계에 생중계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쿠웨이트 탈환의 전초기지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외국군 주둔을 허용케 설득하는 등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라크군은 10만 명 이상 전사했지만 다국적군 사망자는 199명에 그쳤다.

 종전 후 돌아온 전쟁영웅을 향한 정계의 러브콜이 쇄도했으나 그는 91년 전역한 뒤 자선활동을 하며 조용히 지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세 명의 자녀가 있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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