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게 감동 주는 예술사업가가 되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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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가 점점 유흥가로 변해 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학교 앞 서점이 문을 닫은 자리에 술집과 옷가게가 들어선 광경은 여전히 우울하다.

그런데 이런 대학가 풍경에도 아랑곳없이 세미나실과 서점, 영상실 등을 갖추고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카페가 있다. 문을 닫기는커녕 각 대학가에 대규모 분점을 내며 기업형 카페로 성장한 ‘민들레영토’의 경영비법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점 중 하나다.

그러나 민들레영토의 창업자 지승룡씨의 말을 들어보면 그 비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스스로 다방 마담을 자처하는 지승룡씨가 펴낸 『민들레영토에 핀 사랑』(골든북)에는 1994년 신촌에서 열 평 짜리 양장점 공간을 빌려 시작한 민들레영토가 독특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과 사랑을 가장 중시하는 그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다.

‘Human이즘, 休머니즘, 휴Money즘’의 경영철학
지승룡씨는 경영학 전공자도 아니고, 막대한 사업자금을 물려받은 부잣집 아들도 아니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로 일하던 그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면서 목회 활동을 접고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실업자가 된 후 돈도, 할 일도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위안은 책이었다. 정독도서관으로 출퇴근하다시피 한 3년 동안 읽은 책이 2천 권에 달했다.

암울한 상태에서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여성지와 동화책, 그림책으로 시작했던 독서가 마지막에는 경영, 경제학 공부로 이어지면서 얻은 결론은 감동, 사랑, 섬김이 최고의 경영비법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가 ‘드시고 더 드세요’라는 어머니 마음을 경영에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흥문화를 대신할 건전한 문화욕구를 받아들여 컨텐츠로 개발한 것도 ‘민토’의 성공비결이다.

“저는 가능한 한 손님에게 많은 것을 드리는 게 성공 비법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예를 들어볼까요? 민들레영토에서는 음료를 여러 번 리필해서 마실 수 있지만, 리필하는데 추가로 드는 비용은 사실 얼마 되지 않죠. 무료로 제공하는 컵라면도 그리 비싸지 않고요. 비치된 잡지나 책은 여러 분이 돌려볼 수 있으니 많은 돈이 들지 않아요. 게다가 영화도 보고 세미나실을 쓸 수 있으니, 손님은 찻값인 3천5백원의 열 배가 넘는 부가가치를 얻어가지만, 제가 그걸 제공하기 위해 3만5천 원이 드는 건 아니거든요. 약간의 초기투자비용만으로 손님이 투자한 금액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드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손님이 한번 올 걸 두세 번 오시고, 혼자 올 걸 다른 분들과 함께 오시면서 손님도 자연스레 늘게 된 거죠”

민들레영토에서는 찻값 대신 문화비를 받는다. 예쁜 디자인의 종이컵과 컵받침을 쓰는 것도 민토의 특징이다. 1994년 신촌에 민들레영토를 처음 열었을 때, 어렵게 얻은 카페 자리가 무허가 건물이어서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을 수 없자 지승룡씨는 회원제 문화공간을 생각했다.

그리고 차를 만들어 파는 대신 자판기를 설치하고 주문제작한 종이컵으로 차를 대접했다. 찾아온 손님에게는 장소사용료인 문화비를 받았다. 손님이 입회서를 작성하고 입회비를 내면 휴먼세라피라는 심리상담도 해줬다. 문화비와 종이컵은 그가 민들레영토를 시작할 당시 겪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지금은 민들레영토의 성격을 대변하는 독특한 아이콘이 됐다.

고객에게 받은 사랑으로 채워진 공간
민들레영토가 지금처럼 커질 수 있었던 것은 과감한 공간 확장 때문이기도 하다. 고객을 수용할 공간이 넓을수록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승룡씨는 돈이 없으면 빌려서 공간을 늘리고, 그렇게 늘어난 수입으로 빌린 돈의 이자를 갚으며 민들레영토를 키워나갔다.

손님과 주인의 구분 없이 토론이 이뤄졌던 초창기 민들레영토 시절을, 지승룡씨는 힘들었지만 따뜻한 시절로 추억한다. 서대문구청이 낸 신촌 명물거리 조성안의 일환으로 민들레영토가 헐릴 위기에 처하자 손님들이 서대문구청 홈페이지에 항의하는 글을 올리고,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에서 ‘민토 지키기 성명서’를 내며 도와준 일은 그에게 가슴 뿌듯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것도 ‘공간을 채우는 사랑’이다. 받은 만큼 고객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지승룡씨는 요즘 하루 평균 4시간 밖에 자지 않는다. 2007년이 되면 은퇴해 시골 기차역에 카페를 열고, 서비스를 교육하는 민토 아카데미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준비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MINTO’ 브랜드로 해외에 진출해 배니건스나 스타벅스 등 해외 기업에 못지 않은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키우는 것도 그의 장기적인 목표 중 하나다.

“성경에 야곱이 아내를 얻으려고 14년을 고생했지요. 그 속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있을 걸로 생각해요. 1994년부터 7년 간은 민들레영토가 기업이 된 시점까지고, 이제 남은 것은 기업이 된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7년이지요. 초창기에 도전과 카리스마, 역경을 극복하는 리더가 필요했다면, 기업이 되고 나서는 전문적·과학적·합리적인 리더가 필요합니다. 전 경영자보다 사업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음악이나, 춤이나,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처럼, 저는 사업이라는 소재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가치를 높이니까요.”(고경원/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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