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말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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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살인강도가 나왔다, 세무서원들이 어디 가서 술을 마시다 들켰다, 중학입시에 부정이 있다, 하는 비위는 그것대로 딱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와 같은 소위헌법기관이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을 어기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위헌이란 절대로 있어선 안되고, 위헌이 아닌 것을 위헌이라고 울림장을 놓아서도 안되고, 꿈에라도 위헌의 흔적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철저히 그 시비를 가려야한다.
내년도 예산심의를 둘러싸고 위헌이다 아니다 하는 말이 벌써 두번 나왔다. 첫번은 예산이 법정기일안에 통과될 것을 바라는 측에서, 만일 그 기일이 넘어가면 헌법의 명문을 어기는 결과가 되어서 위헌이 된다고 서두르고 나선 것. 그러나 설계는 법정기일을 사흘이나 넘기고 예산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예산이 통과된 후엔 위헌얘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최근에는 내년도 예산이 통과된 다음에, 올해들어 세번째의 추가예산을 국회에 낸 것이 위헌이란 말이 나왔다. 정부측은 물론 위헌이란 천만부당한 말이고 오히려 헌법의 조문을 지키기위해서 제출한 것이니 위헌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지난번에 위헌사태가 빚어질 것을 걱정하던 정부측이 이번에는 스스로 위헌의 비난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보나마나 이번에도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위헌얘기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게 될 공산이 크다.
법률에 어두운 선량한 시민으로서는 위헌이다 아니다하는 끔찍한 말썽은 국사를 맡아서 요리하는 사람들에게 일임해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나라가 민주국가이고 우리 헌법이 민주헌법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눈꼽만큼이라도 위헌이 범해진다면 그것이 대죄로서 다스려질 것을 요구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다. 또 위헌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헌」이라는 끔찍한 말을 써서 떠들어댄다면 그것 역시 용서될 수 없을 것이다. 위헌이란 말을 너무 자주 써 버릇하면 진짜 위헌사태가 빚어질 땐 생쥐 한마리도 동하지 않는 비극이 생길 수 있다. 「이소프」이야기에도 왜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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