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토크쇼] 주역과 21세기 (1)

중앙일보

입력

EBS TV가 도올 김용옥씨의 '노자와 21세기' 후속으로 마련한 성태용(건국대 철학과.49) 교수의 '주역과 21세기' 가 오는 28일 방영을 끝으로 3개월간 48회 강연의 막을 내린다.

성교수는 도올의 TV강연에 대해 "근거가 빈약한 주장을 너무 거창하게 외친다" 고 비평한 바 있다.

성교수는 '비판만 하지 말고 그 만큼 할 수 있는지 해 봐라' 는 일각의 꾸짖음에 떼밀리다시피 이 강의를 맞게 됐다.

"난해한 주역을 대중용으로 쉽게 풀어 쓰고 강의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고 성교수는 고백한다.

성교수의 시도는 도올처럼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잔잔한 호응 속에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성교수의 저술과 강의를 놓고 대담을 나눈 이는 서울대 철학과 허남진 교수다.

허교수는 "주역이 점 치는 책으로 출발했지만 그것을 넘어 철학적 사색과 윤리적 삶을 추동해 온 동양철학의 핵심이었음을 책과 강의에 더 많이 담았으면 좋았을 것" 이라고 말했다.

사회〓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미리 알고 싶어하는 것은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도 변함이 없다. 미국이 당한 세기의 테러로 인해 미래는 더욱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아마존 서점에선 프랑스의 전설적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책이 갑작스레 인기다. 주역도 예언서로 볼 수 있을까.

성태용〓주역은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예언하지 않는다. 현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을 조언해주는 책이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

허남진〓예를 들면 고대 인간에게 중요했던 일식이 언제 일어날지를 점치는 것과 오이디프스의 예언은 옛날엔 똑같은 차원의 예언이었다. 고대 세계관의 특징은 하늘의 일이나 인간의 일을 똑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한 점이다. 그러나 근대적 사고는 그와 다르다. 일식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오이디프스가 예언을 무시했으면 비극이 현실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미국을 강타한 테러사건이 어떻게 귀결될 지 점쳐볼 수 있을까.

성태용〓미국이 점을 친다면 보복공격이냐 아니면 대화의 길이냐를 놓고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주역의 본의로 볼 때 이런 경우는 점칠 필요도 없다. 테러의 악순환이 우려될 뿐이다. 주역 괘의 위치로 보면 미국은 임금의 자리인 비룡재천(飛龍在天) 의 5효에 해당한다. 그런데 미국은 극단의 자리라 할 수 있는 항룡유회(亢龍有悔) 의 6효로 나갈 조짐을 보인다. 6효의 자리는 너무 높이 올라가 균형을 잃은 위치로 교만하기 쉽다. 그래서 후회가 있게 된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의 지도적 역할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사회〓주역의 근본원리는 무엇인가.

성태용〓상대적으로 대립되는 요소를 상징하는 음(陰) 과 양(陽) 의 상호작용이다. 중요한 것은 음과 양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양의 요소가 들어 있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음양은 선과 악이 아니다. 끊임없이 순환하고 조화 협력하는 것이지 상대방을 무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허남진〓동양적 상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역은 시중(時中) 을 중요시한다. 음이 움직이면 양이 되고, 양은 또 음이 될 수 있다. 음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속에 어디 위치하냐를 보아야 한다. 주역의 대의는 한마디로 '바르게 살라' 가 결론이다. 그것에 통달하면 동양적 성인(聖人) 이 된다. 바르게 살아 성인을 지향하고 있다면 더 이상 점칠 필요가 없다.

사회〓 '주역과 21세기' 라는 제목은 무슨 의미인가.

성태용〓내 책 속에 21세기는 아직 없다. 방송국측에서 '21세기 시리즈' 를 내겠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분명히 밝혀둘 것은 동양고전이 21세기의 만병통치약이자 새로운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고 위험한 발상이란 점이다. 동양엔 더 다듬고 반성할 것들이 많다.

허남진〓주역으로 모든 걸 다 해결하겠다는 사고는 물론 위험하다. 그러나 21세기에 유효한 의미를 주역적 사고에서 끌어낼 수 있다. 서구도 근대적 이성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한다. 그들은 니체나 하이데거 같은 근대 이성에 반대한 철학자들을 리바이벌 시키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해체주의라 대안을 내기가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동양적 가치에서 한 대안을 살펴 볼 수 있다.

사회〓3개월 강의를 해보니 도올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나.

성태용〓도올의 방법이 비학문적이었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도올이 그 오랜 기간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역이 동양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인가.

허남진〓주역은 도가(道家) 와 유가(儒家) 의 절묘한 조합적 세계관이다. 그 출발이 세계를 인간과 신의 의지가 아닌 그 스스로의 정합적 체계로 움직인다고 본 점이 도가와 연결된다면, 그에 대한 해석사에는 유가의 윤리가 깊게 작용했다.

사회〓성교수 책과 강의의 한계는 무엇인가.

허남진〓이 책은 새로운 학설은 없지만 틀리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점부터 시작해 괘를 하나하나 풀이한 것이 방송으론 재미있었겠지만 주역의 많은 가능성을 상쇄해 아쉬었다. 예컨대 주역 해석사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인 「계사전(繫辭傳) 」의 '역유태극, 시생양의(易有太極, 是生兩儀) ' 처럼 주역 전체를 함축하는 구절에 대한 풀이가 있어야 했다. 이 구절은 성리학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주렴계의 태극도설과도 연결되고 퇴계 이황의 철학과도 연결되는 구절이다.

성태용=2, 3권을 쓸 때 참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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