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메모꽂이』

    사무실이나 일반가정의 현관 혹은 전화기 옆에는 방문객·걸러왔던 전화번호 등을 알리는 「메모지」가 늘 필요하다. 사진의 강아지형「메모」꽂이는 나무로 몸판·다리를 만들고 입은 빨래줄에

    중앙일보

    1971.11.06 00:00

  • 황토같이 소박한 심성의 인간

    화가 정규를 처음 만난 것은 1951년 봄날 부산 광복동의 금강다방에서였다. 당시 월남하여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예술가의 꿈과 정열로 소탈한 몸가짐을 가진 것이 그의 첫인상

    중앙일보

    1971.07.09 00:00

  • (181)-서울수복행정과 치안|「6.25」20주 3천여 증인회견 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3년

    정부의 환도가 전격적이었던 만큼 이에 따른 수도의 행정과 치안질서의 회복도 빨랐다. 정부는「유엔」군의 인천 상륙 직후에 서울수복에 대비하여 30여명의 행정수복요원을 비밀히 임명,

    중앙일보

    1971.05.29 00:00

  • (180)서울수복(5)|환도

    9윌28일 상오10시, 경남도지사 양성봉씨 관저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장관들의 얼굴은 기쁨과 흥분으로 뻘겋게 상기돼 있었다.

    중앙일보

    1971.05.26 00:00

  • (156)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2년|학도 의용병(13)|재일 교포 학도병

    6·25때 지도층에 있는 일부 인사들이 파렴치하게도 외국으로 도피하려다 적발된 경위는 본 연재 137회에서 다룬바 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에 있는 교포학도들이 조국의 위기를

    중앙일보

    1971.03.29 00:00

  • (10)월남민

    키를 넘는 강물, 가시덤불의 오솔길을 헤치고 북한「엑서더스」에 성공한 사람들의 수는 8·15후 6·25까지 대략 1백만명.(한국은행 조사로는 48만 5천 48명으로 그치고 있다)

    중앙일보

    1970.08.17 00:00

  • ④전주 합죽선

    부채는 예부터 우리 생활 속의 여름철 필수품이었다. 또한 풍류의 멋 부림에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 부채가 지금은 「에어컨디셔너」와 선풍기에 밀려 빛을 잃어가고 있다.

    중앙일보

    1970.08.06 00:00

  • 원고료

    흔히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요즘은 원고료로 생활이 됩니까?』 혹은『우리나라에 순 문필업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또 혹은 「어떻습니까. 원고료가 안 오른다 안

    중앙일보

    1970.08.03 00:00

  • 목각

    무표정한 나무위에 손칼하나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목각은 거창하게 벌이지않고도 집안에서 조용히 미를 기를 수 있는 일이다. 나무의 결을 살아있는 나무 이상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

    중앙일보

    1970.06.20 00:00

  • 한국 배우인기 대단|인니 아시아 영화제

    15일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제16회 아시아 영화제에 참석하고있는 한국·일본등 아시아 7개국의 남녀배우 1백명이 14일 자카르타시 환도 4백43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축제에 참가했

    중앙일보

    1970.06.15 00:00

  • (4)교양활동

    60년대의 여성활동은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 질로나 양으로나 본궤도에 오른시기였다 8·15해방직후의 여성활동은 좌익계 여성의 난동을 막기위한 투쟁의 테두리를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중앙일보

    1969.12.09 00:00

  • (445) 6·25

    「6·25」가 벌써 열아홉해 전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너무도 결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것 같다. 어떤 결점이냐 하면, 편

    중앙일보

    1969.06.25 00:00

  • (198)성역 현충사

    『빚나는 충의를 어디 비길꼬 저 하늘 해와 달을 올려다 보게.』 이것은 숙종때 사람, 목사 임홍량의 현충사 상량문중에 있는 노래의 한 귀절이다. 과연 해와 달로써 충의를 비길만한

    중앙일보

    1969.04.26 00:00

  • (5) 장덕준 선생

    우리나라 신문 사상 첫 순직 기자는 장덕준씨이었다. 50년 전 동아일보가 창간되던 그해 겨울 만주 혼춘에서 우리 동포가 무수히 학살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현지로 떠난

    중앙일보

    1969.04.12 00:00

  • 굴곡 큰 정국

    광복의 날 1945년 8월15일. 민족해방의 8·15는 바로 비극적 민족분단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36년간 지배자로 군림했던 일제가 물러간 한반도는 38분계선을 사이에 둔 채 남북

    중앙일보

    1967.08.15 00:00

  • 헌정 19년|개헌 아홉번 수난의 역정

    6·8 총선 후 정국이 수습의 길을 모색하고있는 가운데 제19회 제헌절을 맞았다. 지난 19년의 한국헌정사는 이나라 미주정치의 성장과정이었다고는 하지만 수난의 연속이었다. 52년의

    중앙일보

    1967.07.18 00:00

  • 중앙청 청지기 정년퇴직

    중앙청을 돌보며 지켜 오기 서른한해-. 반백의 나이로 정든 집을 떠나는 중앙청의 청지기가슴에 별이 달린 훈장이 붙여진다. 화제의 청지기는 이인갑(56·총무처관리과 주사)씨. 그는

    중앙일보

    1966.01.0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