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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배준호 교수에게 듣는 韓·日 ‘100년 기업’ 격차의 비밀
日 장수기업의 번성은 도시 상공인 계급을 우대한 역사적 실용성에 바탕 둬 유교를 교조적으로 수용한 조선은 상공업 천시… 거상의 재산은 ‘여차하면 내 것’ 치부 배준호 한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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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1등 못하니까 괜찮다?…공로에 보답하지 못하는 나라
━ 유성운의 역사정치⑪ 영화 '명량' [중앙포토] “임진년 서행(西行)할 당시에 호종했던 사람들에게 녹훈할 것을 전교하였는데 이제 왜적도 몰아내고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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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정유년의 동아시아 국제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설명절과 보름을 거치면서 명실 공히 정유년(丁酉年)을 느낀다. 금년은 12지 간지로 60년 만에 찾아오는 정유년으로 420년 전 정유재란(1597)의 7주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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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이순신이 살아 돌아온다면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으면 나라 망할 것”“국가의 권력은 대통령이 아닌 국민에게서 나와”류성룡은 조정 반대 무릅쓰고 이순신 발탁, 이순신은 23전 전승으로 위기의 나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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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집성촌서 400년 거주 … 진린 명예회복이 가문의 꿈
1 전남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에 있는 사당 ‘황조별묘’. 광동 진씨 시조인 진린 장군의 초상화가 내부 중앙에 걸려 있다. 2 황조마을 전경. 72 가구 중 60여 가구가 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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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광양만의 진린(陳璘)제독
1597년 일본은 조선에 재침(정유재란), 한반도의 동남해안 3대 거점에 왜성을 쌓고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울산성,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의 사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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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한국인? 서양인 열광 '하멜 표류기' 보니
서구의 식민주의가 정점으로 치닫던 19세기 말, 대한제국이 드디어 문호를 개방하자 은둔의 나라를 탐험하려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코리아를 여행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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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분단, 400년전 ‘임란’이 원류”
1592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군 선발대가 부산 연안에 상륙함으로써 임진왜란은 시작됐다.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점령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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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일본군 총사령관 17대손 "조상 대신 사과드립니다"
임진왜란 당시 칼을 겨눈 한.중.일 주역의 후손들이 12일 안동에서 400여 년 만에 횃불을 한데 모아 ‘화해의 불’을 점화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휘동 안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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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400여 년 만에 역사의 화해
임진왜란 당시 칼을 겨눈 3국 장수의 후손들이 400여 년 만에 경북 안동에서 화해의 손을 맞잡는다. 백척간두에서 조선을 구한 이순신과 침략의 주역 일본군 총대장 우키다 히데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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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조선침략 사용 서울 중심 倭軍 배치도 발견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그려 조선 침략에 사용한 서울의 옛 지도가 발견됐다. 이 지도는 1592년 왜장 가토 미쓰야사(加藤光泰)를 따라 조선에 왔던 다카키(高木)라는 인물이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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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제휴사 뉴스 파일] 부산일보
임진왜란의 왜군과 충렬사는 맞서 있다. 침략과 도발을 한 이들이 왜군이라면, 충렬사는 그 도발에 맞서 산화한 이들의 영령이 모셔진 곳이다. 그런데 그 왜장의 후손들이 408년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