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453)-|경무대 사계(80)

    이 박사는 얼마 되지 않는 친척과 옛날부터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 관직은 주지 않았지만 여러모로 도와주었다. 나는 이 박사 환국 후 『조선은행을 그만두고 할아버님 모시고 일하겠습

    중앙일보

    1972.05.08 00:00

  • (343)|가요계 회면 사(23)|고복수

    처음 일본공연은 태극기사건으로 실패했으나 조선악극단은 그 뒤 연달아 일본에서 공연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일제탄압이 심해 가는 곳마다 슬픔을 겪었다. 41년12월8일 제

    중앙일보

    1971.12.27 00:00

  • (209)-제자는 필자|제15화 자동차 반세기(3)-송용기

    자동차도입이 늦은데 비해 우리 나라의 운수사업, 즉 자동차여객운송사업은 무척 빨리 기틀이 잡힌 것으로 알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황실에서 처음으로 승용차를 구입한 이듬해부터 운수

    중앙일보

    1971.07.19 00:00

  • (208)-제자는 필자|제15화 자동차 반세기(2)

    우리 나라에 자동차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인력거만 타도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때만도 우리 나라의 대중교통수단은 우마를 이용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고, 경성(서울)에선 전차와

    중앙일보

    1971.07.17 00:00

  • (207)-제자는 필자|자동차 반세기(1)

    필자 서용기씨는 올해 67세로 우리 나라 운수업계의 원로. 1928년 일본 「요꼬하마」 자동차전문학교를 졸업한 이래 서울 승합·대일여객사장 등 43년 동안 운수사업을 경영해 왔으며

    중앙일보

    1971.07.16 00:00

  • (145)-양식복장(제10화)

    양복이 일반에 보급될 초기의 양복점은 외국인에 의하여 경영되고 제품 되었다. 처음에 서울에는 중국인 경영의 양복점이 판을 쳤다. 정동에 있는「복장」 양복점은 주로 고급관리를 장대

    중앙일보

    1971.05.0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83)|창군전후(2)|이경석

    내가 일본육사 제45기생으로 졸업한 것은 1933년. 신의주 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미국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영화에서 본 것이 육사를 지망한 동기였다. 당시에는 교육 총감부라는데

    중앙일보

    1971.02.16 00:00

  • (30)인술개화(2)|정구충

    내가 오오사까의 예과에 입학했을 때는 초창기이긴 하지만 우리 나라에도 서의 라고 부르는 현대 의학이 도입되어 세브란스 의학 교에서는 1908년에 1회 졸업생 7명을 내었고, 지금

    중앙일보

    1970.12.12 00:00

  • (153)김을한|해방에서 환국까지

    일본의 책임은 크다. ▲영목일씨의 담=지난 1964년 11월22일 이은 전하 내외분은 무사히 한국에 돌아가시었다. 나는 하네다 공항까지 나가서 전송하였는데 아드님 이 구씨까지 세

    중앙일보

    1970.11.04 00:00

  • (149)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육군대학에서는 전하는 나보다 2년 선배였는데 가끔 마술 시간이 함께 되어 외양간에서 마장으로 가는 도중에 만나 뵐 기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반드시 무언가 은화 하게 말씀을 해주시

    중앙일보

    1970.10.30 00:00

  • (128)해방에서 환국까지|

    해방 전 보통사람 같으면 백화점에 가더라도 미쓰꼬시나 죠오지아와 같은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곳으로 갈 터인데 그 보다 규모가 작고 모든 점에 있어서 시설이 빈약한 조선사람의 백화점을

    중앙일보

    1970.10.06 00:00

  • (65)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2·26 사건은 일본군끼리 싸워서 한 때는 동경이 불바다가 될 뻔하였으나 영친왕의 우도궁 제59연대가 반란 부대를 포위한지 이틀만에 항복하여 겨우 대란만은 면하였으나 그 사건이 끼

    중앙일보

    1970.07.21 00:00

  • (49)해방에서 환국까지

    영친옥은 불난서를 위시해서 영국,서서,백이의,이태리,화난, 정말, 「노르웨이」, 서전, 파난,오지리,애급등 여러나라를 두루 시찰하고 그 이듬해 4월10일에 들아왔는데 비록 개인자격

    중앙일보

    1970.07.02 00:00

  • (36)해방에서 환국까지

    진왕자가 세상을 떠난지 꼭 10년만인 1931년12월29일에 둘째 아들 구왕자를 낳았다. 일본의 황실전범에 의해서 양자제도가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세자가 없으면 왕가는 자연 단절될뿐

    중앙일보

    1970.06.17 00:00

  • (28)해방에서 환국까지

    당시 일본은 군벌의 전성시대로 육군대장 야마가다(산현유붕)는 소위 장주벌의 대표격으로 원로적 지위에 있었고 역시 육군대장 데라우찌(사내정의)는 조선총독으로 있다가 총리대신이 되어

    중앙일보

    1970.06.08 00:00

  • 사랑과 인내로 이긴 기구한 인연|방자여사가 말하는 결혼생활

    일본 이본궁가의 왕녀였던 방자여사는 1920년 4월28일 나라 잃은 조선의 황태자 이은공의 비가 됨으로써 기구한 내조의 길에 올랐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은 그들 자신은 물론 주위의

    중앙일보

    1970.05.02 00:00

  • 조선「호텔」 반세기|자취 감출 일의 「잔해」

    조선 「호텔」이 헐린다. 조선 「호텔」은 일제와 미군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주 없는 영역으로 소용돌이쳐왔다. 조선총독부의 그 거창했던 잔재의 하나가 이재 그 자취를 감추는

    중앙일보

    1967.06.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