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유정회 2기 의원 새 후보 23명의 얼굴

    권중동 (44·안동) 우표 도안 요원으로 체신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계기가 되어 체신 노조 위원장을 맡았다. 자유당 시절 30대에 위원장을 하다가 물러난 후 7년간 와신상담하다

    중앙일보

    1976.02.14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526)|등산50년(제48화)

    백두산 정계비가 장군봉으로부터 한반도쪽으로 치우치기를 2km정도에 그친 것이 어쩌면 불행중 다행인지도 모른다. 청의 특사 목극등이 더 남하시키려고 수작하는 것을 제법 줏대있던 통

    중앙일보

    1975.12.30 00:00

  • 북경의 포드

    「J·네루」의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1950년대 후반에 「네루」 인도 수상은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마치고 백악관을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중앙일보

    1975.12.06 00:00

  • 「이란·붐」

    어느 TV의 해외「르포」에「이란」의「코람샤르」항이 잠깐 방영된 것을 보았다. 남서쪽, 「페르샤」만에 있는 이 항구는 해외 무역의 중심지. 놀라운 것은 허허벌판 같은 선적 장에 쌓여

    중앙일보

    1975.11.25 00:00

  • 한국 여성

    서양 여자에 대한 인상기를 쓴 최초의 한국인은 아마 유길준 일 것 같다. 『서유견문』을 보면 필자는 붓을 들고 그야말로 얼어 있다. 『…호악의 비평은 불하하노니…』. 유길준은 서양

    중앙일보

    1975.03.18 00:00

  • 프놈펜

    『크메르』의 정세는 점점 더 위급해지고 있는 것 같다. 미주간「타임」지의 특파원은 『빈틈없는 공약은 어쩌면 며칠, 아니면 시간의 문제』라는 현지보도를 하고 있다. 수도 「프놈펜」은

    중앙일보

    1975.02.27 00:00

  • (5)|후진국 정치체제의 동요

    74년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시아에 밀어닥친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구실 삼아 이 지역 군소 국가 집권자들이 실시해온 강권 정치가 내부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받은 해였다. 전후 4반

    중앙일보

    1974.12.25 00:00

  • 닉슨 중동 순방으로 급조된 「미 외교의 승리」…소와 서구의 불만 어떻게 해소할지가 열쇠

    「닉슨」 미 대통령의 최근 중동순방은 정년3차 종속 전쟁이래 친소·반미로 기울던 이 지역의 세력균형을 극적으로 친미 쪽으로 기울게 한 일대승리를 미국외교에 안겨줬다. 중동 전 자체

    중앙일보

    1974.06.19 00:00

  • 국회소집 회피하는 야당

    24일의 신민당원내 대책위는 열기로 여야가 합의했던 내무·문공위가 무기연기 된 것을 성토하는 노승환 의원의 고함으로 소연했다. 내무위는 28일부터 열기로 했다가 민청학련사건의 수사

    중앙일보

    1974.05.25 00:00

  • (하)독「수피겔」지가 분석한 소 극동군 증강의 저변

    70년 미-소 전략무기제한회담(SALT)협상 때 소련은 중공의『도발적 행동』에 공동조치를 취할 것을 미국에 제안한 일이 있다고 상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이었던「존·뉴·하우스」가 폭로

    중앙일보

    1974.03.04 00:00

  •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일본 외교의「아랍경사」

    【동경 박동순 특파원】『그저 하느님 앞에 기도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일본참의원이 석유위기 문제를 가지고 마구 몰아 세우자「오오히라」일본외상은 느닷없이「하느님」을 찾아서 가벼운 웃

    중앙일보

    1973.11.23 00:00

  • IBRD의 한국 경제 평가

    해마다 내한하여 경제 동향을 평가하고 정부에 대하여 정책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IBRD(세계 은행)의 보고서는 대한 경제 협의체 (IECOK)의 기본 자료로 원용되기 때문에 매우 주

    중앙일보

    1973.10.09 00:00

  • (8)|제2화 왕인박사의 직손 아도홍문씨(4)-제1장 자랑스런 귀화인의 후예들

    왕인 공원안의 왕인묘에 대해서는 이설을 주장하는 이도 물론 적지 않다. 『일본 속의 조선문화』(I∼Ⅲ권·강담사간)란 책으로 필명을 떨치고 있는 교포작가 김달수씨도 그 중의 한 사람

    중앙일보

    1973.08.24 00:00

  • 답보…이해와 신뢰의 도정

    12일은 한적이 역사적인 남북 이산 가족 찾기 사업을 제의한 「8·12」성명 두돌. 불신과 적대로 얼룩진 4반세기의 남북 장벽을 깨고 이해와 신뢰의 징검다리를 놓기 위한 새 장이

    중앙일보

    1973.08.11 00:00

  •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국내외 정책에 미칠 영향

    「닉슨」 자신이 지난달 30일 그의 침통한 연설에서 지적했듯이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정치의 중추부인 백악관 자체의 권위에 대해 심각한 손상을 끼쳤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

    중앙일보

    1973.05.03 00:00

  • 중화인민공화국당국과의 접촉

    『대륙붕분극종 획정애 관하여 어느 때라도 중화인민공화국상국과 협의할 용의가있다』 는 16일자 외무부 성명은 많은 함축을 담고 있다. 정부가 중공을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처음으로

    중앙일보

    1973.03.19 00:00

  • 중동…평화 모색에의 정중동

    월남 휴전을 마무리 지은 후「닉슨」은 의회에 보낸 연두 교서를 통해 미국의 다음 외교 목표가 중동 평화를 이루는데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한숨 돌리면 「전쟁도 평화도 아

    중앙일보

    1973.02.07 00:00

  • (598)북간도(18)이지택(제자 이지택)

    이 무렵에 북간도에는 한족 독립기성회라는 것이 조직되었다. 3·1만세가 있기 전 결성된 이 단체의 구성 경위를 얘기해야겠다. 앞서 강봉우가 국내로 돌아오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노

    중앙일보

    1972.11.01 00:00

  • 지나친 만화

    공교롭게도「하노이」의「프랑스」대사관 건물이 폭격을 당했다. 「로저즈」미 국무장관은 즉각「프랑스」정부에 공식 사과했다. 일설에는 월맹의 대공「미사일」이 폭발했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중앙일보

    1972.10.12 00:00

  • 중단 보단 비정 파헤치자고

    국회 재무위 1반은 문제된 사체관계자료 제출을 미해결로 둔 채 11일 감사를 재개. 신민당은 11일 국회신민당 총무실에서 원내대책위와 재무위원 연석회의를 열었는데 당 분규에도 불구

    중앙일보

    1972.10.11 00:00

  • 70세 고령에 무대에 선 아랍가수 「움·칼숨」여사

    최근 68세의 「릴리· 폰스」가 미국 「링컨·센터」무대에 나타나 세기의 「소프라노」 가 건재함을 과시했다해서 화제를 일으킨 바 있으나 「아랍」지역에서는 지난 50년 동안 무대를 떠

    중앙일보

    1972.07.28 00:00

  • (463) | 경무대 사계 (90)|김상래

    이 박사는 국내 신문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 신문 특히 미국에서 발행되는 「뉴요크·타임스」「워싱턴·포스트」등은 관심 있게 읽었다. 그래도 초기에는 공보 비서였던 김광섭

    중앙일보

    1972.05.19 00:00

  • 화제뿌린 진산의 은밀 귀국

    김용식 외무부장관의 「닉슨」미대통령 면담은 예기하지 못했던 외교적 성과라고 외무부는 자랑했다. 27일 아침 윤석헌 외무차관은『김 장관의 「닉슨」면담은 나도 어제(26일)밤 전문으로

    중앙일보

    1972.04.27 00:00

  • 닉슨 방중 미국무성은 우울하다

    「닉슨」대통령의 중공 방문 성과를 놓고 미국의 조야가 대체로 호의적 반응을 보이며 떠들썩한데 비해 미국외교의「터줏대감」인 국무성은 외교적성과에 콧대가 높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우울한

    중앙일보

    1972.03.0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