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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만남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 ‘배티재’를 넘으면 청암면 경계에 있는 ‘논골 마을’에 이릅니다. 논골은 칠선봉 능선, 해발 600m에 자리한 산중 마을입니다. 산이 높아 하늘은 작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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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파티
지리산 사는 시인 박남준·이원규와 어울린 술자리에서 “내일 연하천 산장에서 한잔합시다” “그려” 의기투합. 느닷없는 산행입니다. 바다 수면으로부터 1586m, 지리산 노고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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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은 방랑 중
산바람·강바람 마주쳐 억새꽃 휘날리는 무딤이 들판을 걸었습니다. 잠시 눈을 감으면 익은 이삭이 뿜어내는 향기를 온몸으로 맡을 수 있고, 눈을 뜨면 바람이 억새 머리끝에서 백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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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은 방랑 중
산바람·강바람 마주쳐 억새꽃 휘날리는 무딤이 들판을 걸었습니다. 잠시 눈을 감으면 익은 이삭이 뿜어내는 향기를 온몸으로 맡을 수 있고, 눈을 뜨면 바람이 억새 머리끝에서 백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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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할머니네 키 넘는 장대에 쇠 끌개를 연결해 바람이 찬, 시린 강물에 던집니다.흰 거품이 섬진강의 고요를 깨고 일어납니다.허리 굽혀 강바닥 모래 무더기에 꽁꽁 숨은 ‘갱조개(재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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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한세월
구박을 피해 맨발로 데크에 나가 담배 한 모금. 몽실몽실 피어나는 연기, 산바람에 스러진다.아래, 절집에서 나는 목탁 소리가 크거니, 작거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숲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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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뭐 했는고?
먼 길 달려온 햇빛이 논에 내려 빛 잔치를 벌입니다. 건너편 둔덕에 앉아 빛 잔치에 젖어 듭니다.현란한 가을빛에 눈을 감습니다. “너는 지난여름 뭐 했는고?” 감은 눈에 비친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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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만큼만 하면 成佛
이웃이나 아는 이들은 우리 집을 ‘다산이네’라고 부르지 ‘창수네’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원래 남이 불러줄 때만 의미를 갖습니다. ‘다산이네’ 하는 것은 집에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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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
우리 동네, 악양과 청학동을 잇는 ‘회남재’를 갔습니다. 예전에는 청학동 도인(?)들이 먹거리를 구하러 악양장에 다녔던 길입니다. 지금은 그림자 잃어버린 옛길로 풀꽃들만 요란맞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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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하는 일
가을 들판이 제법 누렇게 익어갑니다.올 추석은 일러서 조상님들이 햇곡식을 드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절기도 절기지만 날은 또 왜 이리 더운지 모르겠습니다. 예전 같으면 들판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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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대목 장날
추석 대목장입니다. 장마당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그렇다고 하지만 지금의 이 모습 또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예전 같지 않다는 말로 추억거리를 삼을 겁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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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대목 장날
추석 대목장입니다. 장마당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그렇다고 하지만 지금의 이 모습 또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예전 같지 않다는 말로 추억거리를 삼을 겁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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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의 노래
배롱나무 꽃이 지면 여름이 갑니다. 여름은 초록입니다. 초록 세상인 여름에 붉은 배롱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배롱나무는 한여름 땡볕을 온전히 받아 내며 붉은 꽃을 백일씩이나 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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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소녀
논길을 지나다 소녀를 만났습니다. 낯선 사람이 사진기를 들이대니 적이 놀란 눈빛입니다. 딱 사진 한 컷 찍으니 후다닥 도망갔습니다. 한마디 말 걸 시간도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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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오늘
아주 얕은 바람이 부는 저물 녘입니다. 주홍빛 예쁜 범부채 꽃향기를 따라 호랑나비가 바람 타고 날아듭니다. 한여름 8월이 가면 나비는 나뭇잎·풀잎에 알을 낳으며 다음 생을 준비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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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해녀
“안녕하세요?” “화평이네 집에 온 손님인가?” “네 맞아요. 어찌 아셨어요.” “빨간 벽돌집이 화평이네야. 거기서 나오는 거 봤지.” “뭐 하시는 거예요?” “물질하러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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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놀음
소낙비 내리는 날, 원추리꽃 흐드러진 지리산 노고단 운해(雲海)를 보러 길을 떠났습니다. 혹시 비구름이 흩어져 구름 사이로 첩첩이 늘어선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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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앞에 홀로
서해 최남단에 그리 크지 않은 섬, ‘만재도’에 갔습니다. 이야기가 많은 산에 살면서 이야기를 많이 품고 있는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일 년에 한 번 욕심을 부립니다. 동서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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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色 수국 꽃
지나는 길가에서 수국 꽃을 보았습니다. 고아하면서 탐스러운 수국 꽃이 한 무더기 피었습니다. 지나친 길 돌아가 꼼꼼히 바라보니 한 몸에서 여러 갈래의 꽃이 피었고, 그 꽃들은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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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그냥”
해거름에 들길에서 동네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어디 다녀오세요?” “어~어, 논에.” “다 저녁에 무슨 논에요?” “어~어, 그냥.” 대개 길에서 만나는 어르신과의 대화는 기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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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장 왕언니
“오메 오랜만에 왔네, 마누라는? 오늘은 어째 친구들과 안 왔는가. 뭐해 먹지? 마누라 해준 게 맛있제, 내가 헌 게 맛있는가! 입맛 없을제 액젓에 매운 고추 넣고 먹으면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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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
여름 빛과 여름 비를 흠씬 먹어 녹음 짙은 산길을 걸었습니다. 습기 먹은 나뭇잎 쌓이고 쌓여 중화된 향기가 사방에서 피어납니다. 산그늘이 서늘합니다. 옅은 구름을 뚫고 이제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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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 피어난 곳
장마입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장마가 왔습니다. 기상청에 있는 수퍼컴퓨터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변덕 부리는 날씨를 제대로 알아맞히기 어렵다고 합니다. 난감한 일입니다. 산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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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
하지가 지났어도 산중에는 아직 새벽 공기가 서늘합니다. 일찍 잠 깨어 유난히 맑은 아침을 한 호흡에 마십니다. 지난밤의 미몽을 헤집고 나와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맑고 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