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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인사정책
현재는 모든 직업을 천직(天職)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임금 자리를 뜻했다. 임금의 정치를 하늘의 일을 대신한다는 뜻의 천공(天工)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금 혼자 다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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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이이벌이
임진왜란 때 백성들이 대궐에 난입해 형조(刑曹)와 노비 관할부서인 장예원(掌隸院)을 불태우자 선조는 만주로 도주하려 했는데, 이것이 요동내부책(遼東內附策)이다. 『선조수정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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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향신료
프랑스 요리가 질적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치(1519~1589)가 프랑스 국왕 앙리 2세(1519~1559)의 부인이 된 1533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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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부부(夫婦)
고종 13년(1876) 구로다 기요타카(黒田清隆)는 조선 대표 신헌(申櫶)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 조선의 관세권과 사법권이 부인된 불평등 조약이었고, 구로다는 그 대가로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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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전관예우
조선에서 전임자를 제도적으로 우대한 것은 세조 3년(1457) 7월 봉조청(奉朝請)을 설치해 관직이 없는 공신과 종친들에게 녹봉(祿俸)을 준 것이 시초다. 그전에도 정승 등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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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반정
388년 전의 인조반정과 50년 전의 5·16 군사 쿠데타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는 속담은 두 정변의 경우 ‘도둑을 맞으려면 개가 짖어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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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견금불혹
인생의 낭패는 대부분 물욕(物慾)과 색욕(色慾)에서 비롯된다. ‘흰술은 사람의 얼굴을 누렇게 하고, 황금은 사람의 마음을 검게 한다’는 속담은 물욕을 경계한다. 조선 초기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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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출가
가출(家出)과 출가(出家)는 글자 순서만 바뀌었지만 의미 차이는 크다. 출가는 몸과 마음을 기준으로 몇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몸은 가출해 절집에 있지만 마음은 속세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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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남경에서
중국 내륙 답사 도중 남경(南京)에 도착했다.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 때는 금릉(金陵)이라 불렸던 유서 깊은 고도(古都)다. 명나라 개국 시조 주원장(朱元璋)이 고려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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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입하
오늘이 입하(立夏)다. 지금은 잊고 지내지만 예전에는 입춘(立春)·입추(立秋)·입동(立冬)과 함께 사립(四立)으로서 중시했다. 임금은 각 절기마다 다섯 근교를 뜻하는 오교(五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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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국사 신찬
서기 720년 편찬된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세 권의 백제 역사서를 인용한 기록이 자주 보인다. 그만큼 백제의 영향력이 강했다는 뜻이다. 백제 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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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민심
정당마다 민심 잡기에 부산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백성들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장에 “선정을 하면 백성들이 재물을 얻게 된다(善政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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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독부
『대명률(大明律)』에서 규정한 가장 큰 죄가 십악(十惡)이었다. 그중 첫 번째가 모반(謀反)으로서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죄였다. 왕조 교체를 꾀하는 것이 십악 중에서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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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이순신의 죽음
이순신은 선조 31년(1598) 11월 19일의 노량해전에서 전사했지만 피할 수도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그해 8월 18일 병사해 철군령이 내려졌다.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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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부활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는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태복음』 8장 20절)”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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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포도청
조선에서 강·절도사건은 주로 포도청에서 다뤘다. 『성종실록』 1년(1470)조에 ‘포도장(捕盜將)’이란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성종 때 이미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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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사헌부
조선의 최고 권력기관은 사헌부(司憲府)였다. 『경국대전』은 사헌부에 대해 “현행 정사에 대해 논집(論執)하고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풀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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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조선 사법제도
국회 사개특위에서 현행 사법제도에 대해 여러 개선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의 사법체계는 어떠했을까? 국왕의 말이 곧 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사법이 행정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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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나쁜 리더십
1941년 12월 7일 『도쿄아사히신문(東京朝日新聞)』은 ‘일·미(日米) 회담 중대국면’ ‘교섭본론 잠시 정체인가’라는 내용의 미·일 회담 내용을 싣고 있었다. 그러다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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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만가
상여를 멜 때 부르는 만가(輓歌)는 자살자의 영혼을 위로해 만들어졌다. 『사기(史記)』 『전담(田儋)열전』에 따르면 전횡(田橫)은 한(漢) 고조 유방(劉邦)이 중원을 차지하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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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등록금
『국조보감(國朝寶鑑)』 ‘세조 2년(1457) 12월’조에는, 왕세자의 ‘입학례(入學禮)’에 관한 기사가 있다. “왕세자가 선성(先聖 : 공자)을 배알하고 물러나 박사(博士)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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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조보
시골에 있는 일개 유생(儒生)이 조정의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상소를 올리는 실록 기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조보(朝報)’에 있었다. 승정원에서 전날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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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한식
우리 선조들은 한식(寒食)을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사절일(四節日)로 중시했다. 신라인 최치원의 『계원필경(桂苑筆耕)』에는 전사한 장사(將士)들을 한식 때 위로하는 제문(祭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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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관사
관사(官舍)를 공무원의 주거용 처소로 좁게 보는 것은 일본식 개념이다. 관사는 관청 자체를 뜻했다. 지방관의 주거 공간은 서헌(書軒)이었다. 정사를 보는 동헌(東軒) 서쪽에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