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순사건 사형 71년 뒤…대법원 “다시 재판하라”
대법원이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사형을 선고받고 사망한 피고인들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여순사건 민간인 사망자에 대해 재심을 확정한 첫 사례다.
-
'여순사건' 71년 만에 첫 재심 결정…재심 청구 잇따를 듯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대법원에서 열린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의 재심결정에 대한 재
-
[분수대] ‘여순 10·19사건’ 70돌
김남중 논설위원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골에 나는야 간다’. 봄이면 산수유 흐드러지게 피는 전남 구례 산동마
-
[e글중심] ‘70년의 상처‘ 제주 4.3은 여전히 논쟁 중
■ 「 [사진=중앙DB] 오늘은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제주 4.3 사건은 정부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1947년 3월 1일을 기점
-
[단독] 변호사가 주식으로 배상금 날리고 자살…18억 못 받게된 ‘형무소 집단살해’ 유족
전남 완도군에 사는 박경남(74)씨는 요즘 밤잠을 제대로 못 잔다. 국가를 상대로 어렵사리 2년간 소송을 진행해 대법원에서 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배상금 1억원을 받
-
[노트북을 열며] 여수의 두 가지 기억
배영대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여수에 두 번 가봤다. 한반도 남쪽의 바다 도시 여수를 처음 가본 건 2008년 7월이다.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획특집 취재를 위해서였다. 1948년
-
[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28) 전쟁 전의 좌익들
지리산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은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지리산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 뒤에도 주마등처럼 늘 스치는 그림들이다. 일본이 물러가고 내가 만주에
-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뒷면에는 ‘……’
여순사건 여수유족회가 여순사건 61주기인 19일 여수 만성리 마래터널 입구에 희생자 위령비를 세웠으나 용어를 둘러싼 대립으로 비문이 없는 반쪽 비석이 되고 말았다. 위령비는 앞면에
-
[건국 60주년 특별기획] “애꿎은 희생자 명예회복 필요”
14연대 소속 일병이었던 곽상국 목사左와 김천우 여수유족회 회장이 여순사건의 한 현장이었던 여수 중앙초등학교에서 만나 60년 전을 회고했다. [여수=배영대 기자] 여순사건 당시 1
-
여순 사건 좌파 폭력에 우익 피의 보복 …‘반공’ 뿌리내리는 계기로
1948년 10월 19일 한반도 남쪽의 항구 도시 여수. 이곳에 주둔했던 육군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도 파병을 거부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무장 봉기했다. 신생 대한민국의
-
[중앙 시평] 국가보안법이 불편한 사람들
2월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의 운명이 판가름날 전망이다. 8.15 해방 직후는 물론 1948년 정부 수립 때까지도 보안법 같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제가 패망하고 연
-
여순사건 51주기 기념행사…18일 합도위령제
48년 10월19일 발생한 '여순사건' 51주기 행사가 18일 합동 위령제를 시작으로 28일까지 다채롭게 열린다. 여순 사건 진실규명을 위해 힘써온 여수지역사회연구소(소장 이영일)
-
광복50주년 격동의한국 현대50년사50大 그사건들
올해로 광복 50주년을 맞았다.45년 8월15일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은 잠시였고 분단.전쟁.쿠데타 등 한반도의 질곡은 오늘까지 끊이질 않고 있다.정치적으로는 통치권자들
-
보편타당한 사관만 교과서 수록/교육부 「항쟁론」 쐐기의 배경
◎시안 연구위서도 사전 합의안돼/논란부를 소지 있을땐 “수용불가” 교육부가 21일 개정 국사교과서에 「10월 항쟁」 「제주 4·3항쟁」 등의 표기를 사용치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
문민정부서 푸는 「역사의 민원」/현대사 재평가 작업 왜 나왔나
◎“좌경굴레” 거론도 못했던 일/「광주」문제 해결이 성패 열쇠 정부와 국회가 현대사를 재평가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구체적으로 추진중인 것은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과 거창
-
6·25때 척추관통 "40년 고통" 상이용사 정성수씨
『젊은 세대의 일부가 아직도 6·25의 의미를 모르는 현실이 40년간 쑤셔온 허리보다 더 마음 아픕니다.』 지난 51년 육군 2등 중사의 계급으로 경기도 안성 전투에서 분대장으로
-
제주도「4·3사건」42주년|재조명작업 "활발"
제주도「4·3사건」42주년을 맞아 지금까지 「공산주의자들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역사속에 묻혀온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의미를 되새겨보는 재조명작업이 제주도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
-
전남 보성읍 봉산리 노산
전남 보성읍에서 청정해역으로 이름난 득량만으로 가는 길을 따라 5㎞쯤 가면 봉화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마주봉 기슭에 다소곳이 처마를 맞댄 마을이 보성선씨의 터밭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
(4) - 유흥촌이 먼저 반기는 화엄사
곡우가 지난지 10여일인데 집수맞이 어느새 텁텁하고 투박하다. 지리산의 명물 고리수나무의 주액이다. 곡우 무렵 나무밑둥을 저며 받는 생즙이기 때문에 「곡우물」. 유독 약수라 하여
-
(261)「건벽청야」작전(2)
(2) 문제의 「거창사건」은 1951년2월11일에 발생했다. 사단장의 「건벽청야」작전방침에 따라 이 지역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하던 9연대3대대가 거창군 신원면의 주민을 「통비분자
-
(96)-(9)6.25 20주…3천여의 증인 회견 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1) 적 치하 3개월 동안에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한 온 겨레가 큰 수난을 겪었지만, 그 중에서도 북괴군 남침과 함께 그들이 말하는 소위 이「반동분자」로 몰러 체포 투옥된 각계 사회
-
굴곡 큰 정국
광복의 날 1945년 8월15일. 민족해방의 8·15는 바로 비극적 민족분단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36년간 지배자로 군림했던 일제가 물러간 한반도는 38분계선을 사이에 둔 채 남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