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e글중심

‘70년의 상처‘ 제주 4.3은 여전히 논쟁 중

중앙일보

입력 2018.04.03 16:29

[사진=중앙DB]

[사진=중앙DB]

 오늘은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제주 4.3 사건은 정부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이 7년의 기간 동안 제주도에서는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총리실 산하 제주 4.3 사건 위원회는 1만 4232명의 희생자가 있었다고 밝혔고,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진상조사 보고서는 희생자 수를 2만 5천~3만 명으로 추정했습니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은 것입니다.
 4.3 사건은 7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저 '제주 4.3'이라고만 부릅니다. 50년간 '폭동'으로만 불리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4.3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대두됐습니다. 진보진영에서는 '항쟁'으로, 요즘엔 희생자의 시각에서 '학살'로 부르는 이들도 있더군요. 기억해야 할 것은 영문도 모른 채 죽은 2만 5000여 명의 시민들입니다. 당시 반공 토벌대가 파악했던 무장대 숫자는 500여 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국가권력에 의해 무고한 시민의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제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지만 정치권에선 4.3에 대한 갈등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최근 5년 동안 4.3 사건 추모 논평에 쓰지 않았던 ‘남로당 무장폭동’이라는 표현을 쓰며 “남로당 무장대가 산간지역 주민을 방패 삼아 유격전을 펼치고 토벌대가 강경 진압작전을 해 우리 제주 양민들의 피해가 매우 컸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이런 4.3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 “일부에선 아직까지 이념적 잣대로 제주 4.3 사건을 재단하고 제주도민들의 가슴을 두 번 멍들게 하고 있다. 화해와 상생, 평화의 가치를 훼손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우리의 아픈 과거사를 치유하는 데 어떤 도움도 안 된다.” 이념갈등과 대립을 넘어 상처로 얼룩진 4.3의 역사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e글중심(衆心)’이 다양한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 어제의 e글중심▷“분리수거는 우리 국민이 최고, 근데 정부 수준은?"

* e글중심(衆心)은 '인터넷 대중의 마음을 읽는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 커뮤니티 글 제목을 클릭하시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 반말과 비속어가 있더라도 원문에 충실하기 위해 그대로 인용합니다.

#다음아고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양민학살은 꽤 많습니다. 그리고 그 양민학살은 독재정권에 의해 일어났고, 그 주 목적은 '반대세력의 숙청' 이었습니다. 아직도 해골이 계속해 나오고 있는 경남 산청 코발트 탄광 학살 사건에 대해 다뤘던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터는 이곳에서 진행됐던 학살의 양상을 설명하면서 슈직 갱도 앞에 사람들을 굴비 엮듯 엮어 세워놓고 선두의 사람을 총으로 쏘면 그 사람이 쓰러지면서 나머지 사람들이 깊이 수십미터가 넘는 수직갱도 안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때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대구가 오늘날 수구 냉전추구 세력의 중심도시로 변한 것은 이승만이 다리를 끊고 퇴각하면서 대구 지역에서 부역할 수 있는 좌익을 청산한다면서 지식인들을 싸그리 잡아다 학살하는 모습들을 당시 생존자들이 봤기 때문입니다. 일제시대만 해도 "말 깨나 하는 놈 가막소나 가구요" 라는 노래에서 알 수 있듯 감옥에 쳐넣고 모진 고문을 했지만, 이승만 정권에서처럼 바로 죽이진 않았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거창 양민학살 사건도 그랬지요. 그 결과 경상도에서 진보 세력이 싹이 말라 버렸습니다. 이런 모든 사건들의 전조가 되는 일로서의 4.3 항쟁의 진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올해는 그 비극의 4.3 제주항쟁 발발 70주년이 됩니다. 도대체 이 항쟁이 왜 일어났을까요. 이 사건은 단지 고립된 지역의 투쟁이었을까요? 그 진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토벌대장이었던 김익렬 장군은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참 꼼꼼하게 적어 놓았고, 후세들로 하여금 이 사건을 되돌아볼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이승만 때부터 박정희 때까지 군문에 계속해 남아 있었고, 그가 남긴 기록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4.3 항쟁을 진압하고자 이승만은 여수와 순천으로부터 군대를 보내려 했지만 그것은 곧 이른바 '여순 반란'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진압과정을 거치며 지리산의 빨치산이 됐습니다. 실질적으로 한국전쟁의 단초가 된 것은 이 부분이라는 것이 사가들의 증언이기도 합니다”

ID: '권종상'

#클리앙

“홍준표가 '4.3 사건은 김달삼의 주도로 중산간 마을 양민을 볼모삼아 일으킨 좌익폭동'이라고 말하네요.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고서는 빈대를 잡았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사태의 본질을 모르고 있어요. 이념을 떠나서 제주의 학살은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이 잔인하고 흉폭한 만행이었습니다. 간난아이가 업힌 채로 죽은 엄마,  뼈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한 학살현장... 그 시절의 가해자들,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들은 절대 인간이 아닙니다”

ID: '원두콩'

#보배드림

“제주도민 1만 3천여 명이 죽임을 당한 비극이 벌어진지 벌써 70년이 흘렀다고 합니다. 제주도 토박이들이 사는 곳에는 이즈음에 유난히 제삿날이 많다고 합니다. 4.3 사건은 이승만과 미군정이 주도했던 것인데 당사자인 이승만은 이미 죽었고 미군정은 한국에서 벌인 일들에 대해서 그 어느 것도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멋대로 반민특위를 해산시킨 것도 이승만과 미군정입니다”

ID: '꼴라주'

#네이버

“공산당의 사주를 받아 일어난 것은 맞지만 그 피해를 받은 건 불쌍한 시민들이였으며 그 강도는 선동당한 책임에 비해 너무나도 잔인했고 참혹했다. 그렇게 강경하게 반인권적으로 탄압한 군경 미군정은 당시 사회를 감안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에 휘말린 선동된 제주도민들도 아예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결국 이 사건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그 누구만의 책임이 없는 불행한 역사의 단면 중 하나”

ID: 'wbki****'

#다음

“양민이 학살된 건 안타깝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43때 공산당이 반란을 일으킨 건 팩트니까 그걸 순화시켜서는 안 된다. 즉, 피해를 입은 양민을 위한 조치는 있어야 하겠지만 공산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반란군으로 역사에 남겨야 한다. 그들도 양민 속에 숨겨서는 안 된다. 518때 탈취한 총으로 시민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과 순수하게 시민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구분해야 합니다. 아무리 민주화운동이라도”

ID: 'wjd2010'

#엠엘비파크

“뭔가 국가에서 전력을 다해 치유해주고 있는 느낌이네요...제주도 토박이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원래 육지 것들에 대한 반발은 있을 수밖에 없는 분들이십니다. 역사를 알고 보면 육지의 모든 것들을 안 싫어하는 게 이상한 수준이라... 그 정점이 4.3인데 이번 추모식은 전국방송에 진짜 진심을 다해 국가가 치유해주는 느낌이 물씬 나네요. 나중에 찾아보고 싶을 정도의 퀄리티 높은 추모식...이게 진짜 치유되는 추모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나중에 한번 가봐야겠네요”

ID: '김방어'

#뽐뿌

“여순반란사건은 제주4.3진압을 거부한 여수주둔 국군의 반란사건이죠. 지금까진 남로당이 배후조종한 거라고 했는데 이것도 재조사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학부 때 나름 자료 조사하던 중 보았던 기록엔 제주사건의 잔혹함에 대한 분노와 지켜야 할 국민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대한 불만이 일부 군인들 사이에 팽배했던 것이 동기의 하나 였다고...”

ID: '그의나라'

정리: 윤가영 인턴기자

지금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입니다. 제목을 클릭하면 원글로 이동합니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