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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헌법 폐기 노리는 아베 … 주권회복 기념식 쇼
28일 도쿄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주권 회복?국제사회 복귀를 기념하는 식전’ 도중 참석자들이 아키히토 일왕 내외(오른쪽)를 향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고 있다. 맨 왼쪽은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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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이상 다니다 휴학, 복학때 등록금 감면해야"
대학생이 한 달 이상 학교를 다니다가 휴학했다고 해서 복학시에 등록금 전액을 내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공정거래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학생이 휴학한 기간을 감안해 복학시 등록금 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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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각」 열도
태평양 지도를 펴 보면 「오끼나와」근방엔 모래알 같은 섬들이 수도 없이 흩어져 있다. 「센가꾸」 열도는 그 가운데 하나. 대만의 북동부에서 돌을 던지면 떨어질 것 같은 자리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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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시대의 종장|오끼나와 반환
83일간에 걸친 치열한·전투로 미군이 45년6월21일 점령한 「오끼나와」를 포함한 유구 열도와 대동 제도는 51년 전승 연합국과 일본간에 조인된 강화 조약에 따라 일본의 궁극적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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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승 방위 73년 인유
【동경 29일 AP동화】 미국과 일본은 29일 내년에 시정권이 일본에 반환될 예정인 「오끼나와」의 주요방위역할을 오는 73년 7월 1일까지 일본이 인수하기로 규정된 한 협정에 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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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안보조약의 자동연장
23일 자정을 기해 미·일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이 자동 연장된다. 미·일 안보조약은 1951년9월8일 대일 강화조약과 더불어 조인되었고, 그후 1960년1월19일 갱신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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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실리에 과대굴욕|일-중공 각서무역과 군국주의론
경제강국 일본은 중공의 의식적인 정치공세에 말려 홍역을 치렀다. 70년대에 일-중공 관계를 기어이 개선하려는 좌등정권은 각서무역연장에 따른 일-중공 공동「코뮤니케」와 주은래 발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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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외교의 방향
지난 한해 「아시아」 에서는 몇가지 중대한 전환이 있었다. 즉 ① 「닉슨」 미대통령의이른바「뉴·에이션 독트린」의 게양 ② 「오끼나와」 시정권의 반환결정 ③주월미군의 단계적인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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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끼나와」 반환|그 뒤의 일본
「닉슨」미국 대통령과 좌등 일본 수상의 양자 회담을 무대로 한 「오끼나와」반환 교섭이 끝나자 일본 정국의 초점은 오는 29일 좌등 귀국 직후 열리는 임시국회에 쏠렸다. 정부·자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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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가치는 불변
「오끼나와」시정권 반환에 관한 「닉슨」-좌등회담 결과에 대해 외무부는 22일『한국정부의 입장이 대체로 반영됐으며 특히 한국안보는 일본의 안전에 불가결하다는 견해는 환영할만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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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안보는 일과 직결」에 역점|닉슨·좌등이 뜻하는것
「오끼나와」시정권 반환문제를 매듭지은「닉슨」·좌등간의 미일 정상회담결과는 표면상으로는 미국이 일본측이 요구한 바와 같이 핵무기를 철거하고 일본본토와 같은 조건으로 72년까지「오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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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휩쓰는|오끼나와풍
[동경=조동오특파원]「오끼나와」반환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17일좌등일본수상은 그의방미를 저지하려는「데모가 절정에 달한가운데 미국으로 떠났다. 19일(한국시간20일) 부터3일간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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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대는 「기지경제」|기지관련 생업자 10만 여명
「오끼나와」가 전전의 『맨발과 고구마』경제에서 일약 연간 개인소득 5백「달러」한 높은 경제성장을 보이 것은 순전히 미군으로부터 직접·간접으로 흘러나오는 「달러」때문인 것은 두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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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 엇갈린 충승의 기류|주민들이 보는 본토귀속은 착잡하다|박경목
충승의 서울나고국제공항에내려2층휴게실에 들어서면첫눈에 「거리표시판」 여 눈에 띈다. 「뉴요크」1만3천8백67리(한국리수로 5만5천리), 동경8백76리(3천5백리), 기항7백96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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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응잃은「안보공세」|충승데이…일본 좌계 데모
28일「으끼나와」의 무조건 즉각 반환을 요구하면서 제휴한 일본의 사회당과 공산당의「데모」대는 동경도 중심가를 비롯한 전국 3백18개소에서 투석, 방화 등으로 사실상 폭동화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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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제는 불행초래|박대통령, 북괴도발 응징 역설
박정희대통령은 미정찰기 피추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조치는 『현명하고 적절한 것』이었다고 말하고『문제는 지금부터 어떤 조치를 쥐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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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등 방한에 비친 일 외교동향
30일 좌등 일본 수상의 방한은, 그 격식이라든지 어떤 문제가 얼마만큼 협의될 수 있겠느냐는 협상의 폭에라기보다 일본의 전반적인 외교적 자세와의 관련-더 구체적으로는 좌등 방한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