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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징궈, 소련군에 “몰수 기관차·화폐 등 반환을” 당찬 요구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61〉 루스벨트 사망 1주일 후 신임 대통령 트루먼(오른쪽 셋째)과 회담을 마친 중국 외교부장 쑹즈원(오른쪽 둘째).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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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무기 다룰 줄 알아야” 스탈린, 장징궈에 권총 선물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60〉 중·소 우호 동맹조약은 파행을 반복했다. 1945년 8월 7일, 소련의 동북 출병 전날 타결됐다. 소련 외상 몰로토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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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중 공사 벌링게임, 공정외교로 양국 우호에 기여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9〉 미국 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에게 중국 황제의 국서를 전달하는 벌링게임. 1868년 6월 6일, 백악관. [사진 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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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윈의 윈난군, 장제스 그물망 벗어나 중공에 투항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3〉 충칭의 룽윈(오른쪽)과 장제스. [사진 김명호] 장제스(蔣介石·장개석)는 치밀했다. 윈난(雲南)왕 룽윈(龍雲·용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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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윈 “장제스에 복종했는데, 미군과 이간질 상상 못 해”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2〉 난징 탈출 후 홍콩에 머무르던 룽윈(앞줄 왼쪽 둘째)은 대륙으로 돌아갔다. 1954년 5월, 정치협상회의 좌담회를 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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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윈은 평생 민주를 옹호, 독재에 굽히지 않았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7〉 중일전쟁 기간 윈난은 중국의 후방기지였다. 중국 전구(戰區) 사령관 장제스 영접하기 위해 쿤밍 공항에 나타난 룽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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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징궈 “우리는 복잡한 시대에, 복잡한 나라에 태어났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20〉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은 선쥔산을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 대화 녹취도 수락했다. 일국양제의 시험구 홍콩반환 기념식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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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궈쩐 “포탄 맞더라도 공산당 안 해” 저우의 회유 거절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외교부 차장시절 외교부장 쑹즈원(앞줄 가운데), 주미 대사 구웨이쥔(顧維鈞·앞줄 왼쪽 첫째)과 함께 중·영평등조약 체결을 마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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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잔심부름 하기 아까워” 29세 우궈쩐에게 우한 맡겨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941년 1월, 전시 수도 충칭을 방문한 국부 쑨원(孫文)의 부인 쑹칭링(宋慶齡·왼쪽 셋째)을 영접 나온 우궈쩐(중절모 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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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원정서 일본군 대대 섬멸 … 국제적 명성 얻은 쑨리런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국공전쟁 초기 동북을 시찰, 방어시설 둘러보는 쑨리런(앞줄 왼쪽 둘째). 1947년 봄, 창춘(長春). 전쟁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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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쑹즈원에게 돈 빌린 기밀 발설에 진노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건국 초기 쑹칭링(왼쪽 셋째) 등과 우시(無錫)를 방문, 기념사진을 남긴 판한넨(왼쪽 여섯째). 1950년 겨울, 우시 교외.중앙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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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줴짜이 “마오 주석이 판한넨 사형 때리지 말라 지시”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항일전쟁시절, 보위중국동맹을 이끌던 쑹칭링(오른쪽 넷째)과 랴오멍싱(오른쪽 다섯째). 오른쪽 첫째가 훗날 중공 국가 부주석 지명을 앞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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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같은 밥도 여기서 먹으면 맛있어” 쑹칭링 달래
1 중국을 방문한 호치민(胡志明)에게 꽃다발을 증정하는 쑹칭링. 1955년 7월, 베이징. 혼자 사는 여인들은 쑹칭링(宋慶齡·송경령)을 선모(羨慕)했다. 이유가 있었다. 쑹칭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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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잃은 옌유윈 앞에 ‘백기사’로 나타난 구웨이쥔
1947년 12월, 미국에서 발행되는 부녀잡지에 미국서 첫 번째 성탄절을 보내는 옌유윈(맨 왼쪽)과 세 딸의 모습이 크게 실렸다. [사진 김명호] 1945년 4월 12일, 옌유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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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남편’ 된 구웨이쥔, 남편에게 소개 받은 옌유윈
60여년 만에 연금에서 풀려난 장쉐량(오른쪽)과 71년 만에 해후한 옌유윈. 1974년 7월, 뉴욕. [사진 김명호] 1928년 초, 난징(南京)의 국민정부가 전국을 석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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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453] 남편 양광성에게 다음 남편 구웨이쥔 소개받은 옌유윈
[60여년 만에 연금에서 풀려난 장쉐량과 71년 만에 해후한 옌유윈. 1974년 7월, 뉴욕.]1928년 초, 난징의 국민정부가 전국을 석권했다. 상하이에 상주시킬 주재원을 물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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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 점원’ 옌 신허우, 중국 최대 은행 1인자 되다
옌유윈과 양광성의 결혼식. 신부 들러리의 오른쪽 뒤 남자가 옌쯔쥔. 신랑 양광성의 뒤는 중국 최초의 IOC 위원인 국무총리 왕정팅(王正廷). 1929년 9월 8일 상하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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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451] '전당포 점원' 옌신허우, 중국 최대 은행 1인자 되다
옌요우윈과 양광셩의 결혼식. 신부 들러리의 오른쪽 뒤 남자가 엔즈쥔. 신랑 양광셩의 뒤는 중국 최초의 IOC 위원인 국무총리 왕정팅(王正廷). 1929년 9월 8일 상하이.장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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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웨이쥔, 베이징 접수한 장제스 피해 국외 탈출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외교는 구웨이쥔(왼쪽 다섯 번째)의 몫이었다. 구웨이쥔의 생일 잔치에 초청받은 쑹쯔원 형제들. 1946년 뉴욕. [사진 김명호] 상하이 시절의 황후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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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반군 황즈신 ‘장사의 신’으로 제2 인생
쑹즈원(宋子文. 앞줄 왼쪽 여섯번째)과 함께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UN헌장 작성 회의에 참석한 구웨이쥔(앞줄 왼쪽 다섯번째). 앞줄 왼쪽 두번째는 중공대표 동비우(董必武).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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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반란군 살림하다 자바 화교로 거부 일군 황즈신
쑹즈원(宋子文. 앞줄 왼쪽 여섯 번째)과 함께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UN헌장 작성 회의에 참석한 구웨이쥔(앞줄 왼쪽 다섯번째). 앞줄 왼쪽 두 번째는 중공대표 동비우(董必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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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銀 값 인상, 만주국과 조선은행 뒤흔든 나비효과
18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맥킨리 후보의 포스터. 경제번영과 사회발전을 위해 금본위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중국은 자주 세계를 놀라게 한다. 기준금리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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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오디세이] 개인의 머리에서 나왔나, 정부가 법률로 만들었나
제1차 세계대전 중 시베리아에 진출한 일본군의 승리를 선전하는 포스터. 일본군의 대륙진출에 맞추어 군자금을 취급하는 조선은행 조직도 확대되었다. 1911년 출범 당시 중국 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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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잡이’ 쿵린쥔, 이모 쑹메이링 빼닮아 주변서 쑥덕
쑹메이링이 가는 곳에는 어디를 막론하고 쿵링쥔(왼쪽 첫째)이 있었다. 1943년 2월 장제스를 대신해 미국을 방문한 쑹메이링. [사진 김명호] 중국은 복잡한 나라다. 알다가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