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주중 공사 벌링게임, 공정외교로 양국 우호에 기여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0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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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호 29면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9〉

미국 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에게 중국 황제의 국서를 전달하는 벌링게임. 1868년 6월 6일, 백악관. [사진 김명호]

미국 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에게 중국 황제의 국서를 전달하는 벌링게임. 1868년 6월 6일, 백악관. [사진 김명호]

중국의 대외정책은 변덕이 심했다. 해금(海禁)과 개방을 반복했다. 청 제국 4대 황제 강희(康熙)는 해금을 느슨히 했다.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 스싼항(十三行)을 출범시켰다. 국가 전매였던 소금 밀매로 부를 축적한 양저우(揚州)의 염상(鹽商)집단과 수백 년간 봇짐장사로 전국의 은을 긁어모은 산시(山西)의 상단(商團)도 해외무역에 뛰어들었다.

베이징 주재 6년간 중 환심 얻어
청나라 서태후, 흠차대신에 임명
미·중 첫 평등조약 체결에 공헌

아편전쟁 군비 댄 거상 우빙젠
19세기 중엽 세계 최고 부호 돼

반관반상(半官半商)이던 스싼항은 황제의 금고였다. 강희의 손자 건륭(乾隆)은 씀씀이가 컸다. 광저우를 제외한 지역의 해안을 봉쇄시켰다. 제국 유일의 합법적인 대외무역 특구가 된 스싼항은 아편전쟁으로 깃발을 내릴 때까지, 85년간 중국의 대외무역을 농단했다.

광저우 스싼항, 청 황제의 금고

푸안천조약 체결 후 중국인들의 미국 이민이 줄을 이었다. 20세기 초반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 [사진 김명호]

푸안천조약 체결 후 중국인들의 미국 이민이 줄을 이었다. 20세기 초반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 [사진 김명호]

2001년,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난 천 년간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5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중국인도 6명이 이름을 올렸다. 천하의 칭기즈칸과 원(元)제국의 황제 쿠빌라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명(明)의 내시총감 류친(劉瑾·유근)과 건륭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허션(和珅·화신)은 순전히 뇌물과 수탈로 부를 축적했다. 국민당의 재정을 관리하던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처남 쑹즈원(宋子文 송자문)은 공직자였다. 상인은 스싼항의 우빙젠(伍秉監)이 유일했다. 우는 19세기 중엽,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제1의 부호였다.

우빙젠은 봉건사회의 전형적인 관변상인이었다. 서구 상인과의 무역으로 치부했다. 부를 축적하자 미국의 철도사업에 거금을 투자했다. 증권과 보험업에도 손을 댔다. 미국 상인들은우빙젠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유전되는 일화가 있다. “우빙젠은 타고난 승부사였다. 사람 투자에 일가견이 있었다. 스싼항에 거주하던 보스턴 출신 무역업자가 우에게 동업을 제의하자 혼자 해보라며 큰돈을 빌려줬다. 사업이 신통치 않자 미국인은 돈을 상환할 방법이 없었다. 소식을 들은 우는 채무자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직접 불러서 안심시켰다. ‘너는 나의 유일한 미국 친구다. 나는 네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잘 안다.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나와 동업하자. 귀국해서 새로 투자할 곳을 찾아라. 자금은 내가 대고 너는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 귀국한 미국 상인은 우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도 자신의 안목에 만족하며 즐거워했다.”

아편전쟁 기간 우빙젠은 군비 대부분을 조달했다. 패배 후 아편을 소각당한 영국 아편 상인들에게 지불할 배상금도 우빙젠과 스싼항 몫이었다. 우는 중국에서 사업할 맛이 안 났다. 1842년 12월 23일, 성탄절을 앞두고 미국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바닷가에 나가 세월을 한탄하며 나날을 보낸다. 조금만 젊었더라면 미국으로 이주했을지도 모른다.” 이듬해 9월, 19세기 세계 최고의 부자 우빙젠은 미국에 붙어먹은 한간(漢奸)이라 손가락질받으며 생애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우빙젠 사망 20년 후, 미국과 중국의 본격적인 합작이 시작됐다. 1861년 6월 14일, 대통령 취임 100일을 앞둔 링컨이 전 하원의원 벌링게임을 주중 공사에 임명했다. 13대였지만 초대나 마찬가지였다. 앞에 12명은 명예직이었다. 벌링게임은 열렬한 흑인 노예 폐지론자였다. 흑인 노예제 반대자들이 만든 공화당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었다.

우빙젠의 유일한 초상화. [사진 김명호]

우빙젠의 유일한 초상화. [사진 김명호]

베이징에 도착한 벌링게임은 국무장관에게 전문을 보냈다. “미국은 중화제국의 영토를 위협할 이유가 없다. 조약에 명기된 조계(租界) 설치를 철회하자. 중국은 우리의 합작 대상이다.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펼친 무력외교가 아닌 공정한 외교로 중국의 환심을 사자.” 벌링게임은 무슨 일이건 중국에 협조하며 영국과 날을 세웠다. 청나라 정부는 벌링게임을 푸안천(浦安臣·포안신)이라 부르며 신임했다. 공사 임기 6년간 벌링게임은 청나라 정부와 마찰이 단 한 번도 없었다. 1867년 11월 말, 귀국을 준비하던 벌링게임을 위해 성대한 송별연을 마련했다.

당시 청 정부는 1차 해외사절단 파견을 준비 중이었다. 단장으로 적합한 인재 물색에 애를 먹었다. 외교를 총괄하던 공친왕(恭親王)이 서태후에게 건의했다. “푸안천을 ‘중외교섭사무대신’에 임명해 전권을 맡기자.” 서태후는 6년 전 궁지에 몰린 자신에게 최고 권력을 안겨준 공친왕의 청에 토를 달지 않았다.

“벌링게임은 국경 초월 위대한 세계인”

1868년 5월, ‘푸안천 사절단’ 30명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환영연에 참석한 캘리포니아주 지사가 참석자들에게 벌링게임을 “가장 젊은 정부의 아들이며, 가장 오랜 정부의 대표”라고 소개하자 폭소가 터졌다. 워싱턴으로 이동한 사절단은 대통령 앤드루 존슨에게 국서를 전달했다. 벌링게임이 중국대표 자격으로 연설했다. “중국은 미국의 상인과 전도사를 환영한다.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의 특권을 누리기를 희망한다.”

벌링게임은 시애틀에서 미국과 중국 근대사상 최초의 평등조약(푸안천조약)도 체결했다. 내용이 종래의 불평등조약과는 판이했다. “대청국과 대미국은 양 국민의 여행, 장기 거주 등 자유로운 왕래에 합의한다. 미국은 중국의 내정간섭을 안 한다. 중국의 전보 개통과 철도수축은 스스로 결정한다. 중국은 미국의 내전으로 파괴된 태평양철도의 보수와 건설에 염가의 중국 노동자를 지원한다.” 벌링게임은 중국 흠차대신 자격으로 영국도 방문, 빅토리아 여왕을 접견하고 외상과도 두 차례 회담했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을 거쳐 러시아에 도착한 벌링게임은 1년 10개월에 걸친 강행군에 진이 빠졌다. 짜르 접견 다음 날 급성 폐렴으로 객사했다.

청 황실은 벌링게임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1품 관직과 은 1만냥을 하사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이 벌링게임의 일생을 “국경을 초월한 위대한 세계인” 한마디로 정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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