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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허균 시맥의 뿌리 명주 애일당지
백두는 큰 줄기를 동으로 뻗어 금강과 설악을 앉히고 동해에 등뼈를 세워 내리러니 경포에 못 이르러 교산 한 채를 빚는다. 이 작은 산이 세상에 널리 이름을 내게 된 것은 교산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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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인 이근배 최치원의 시원 가야산 홍류동
시로 태어나서 시로 천년이 넘는 세월을 죽지 않고 사는 시인이 있다. 이 땅에 시의 씨앗이 뿌려지고 꽃이 피기를 수천년, 비로소 이 나라에 시인이란 이름의 눈부신 별이 솟아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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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국토기행(7)윤선도 어부사시사의 현장 부용동·침수당
시인의 나라가 있었다. 정치의 어지러움과 외침으로 빚는 수모, 세상의 찌든 때를 훌훌 벗고 시인이 꿈꾸는 이상향을 세워 바다에 띄운 시인이 있었다. 고산 윤선도, 그는 저 향가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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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퇴계학·도산시의 본산 안동 「강산서원」
하늘이 푸르다 하나 구름 낀 날이 많고 강물이 맑아도 물결에 흔들리게 마련이다. 이 나라의 역사에 그 이름이 높은 고학대덕들이 빽빽하지만 임금을 섬기는 가운데서, 혹은 시대적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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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국토기행(4)정약용 다산학.
사람을 산에 비유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의 크기와 높이를 비유할 산은 이 땅위에는 아직 없다. 대저 저 방대한 「다산학」을 누가 자로 잴 수 있으며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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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국토기행|시인 이근배
1 나라가 들끓는다. 봄은 어김없이 와서 자목련의 입덧을 받아주고 대숲의 바람은 술항아리를 비우고 나와 산벚꽃의 볼을 붉힌다 무슨 일을 내려는가 산천이 저렇듯 자지러지는데 이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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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심서」(분수대)
일곱살때 이미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운 거리가 같지 않음이로다」라는 시를 썼다는 다산의 『목민심서』는 지금 읽어도 감명을 준다. 22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23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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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한민족의 자아각성 그 연원을 찾아서-12 벼슬길 멀리하고 「붓」을 살린다
이옥 (1760∼1812)은 박지원 (1737∼1805) 보다는 후배이고, 정약용 (1762∼1836)보다는 선배인 18세기후반, 19세기초의 작가였다. 그 두사람보다 모자라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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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KBS 제2TV 『전설의 고향』(12일 밤10시)=「사필귀정」. 경상도 상주에 사는 김유경은 재주가 있음에도 불구, 당대에 과거가 없어 벼슬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양의 세도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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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머
□…KBS 제2TV『전설의 고향』(5일 밤10시)-「사위 길들이기」.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어온 이득강. 그는 영위정의 사위다. 그런데 장인은 사위가 벼슬길에만 오르면 그 앞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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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머
□…KBS제2TV 『사모곡』(6일 밤9시30분)=2백회. 엄택주는 앞으로 벼슬길로 나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명서 역시 대과급제후 불효의 죄를 빌겠다고 한다. 한편 달서는 자신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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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지 장관
『공연스레 벼슬길에 불려 나가서/문서 속에 파묻혀 청춘은 갔네/앵도 익고 죽순나는 시절은 가고/병든 몸이 손이 와도 마실수 없어/꾀꼬리 노래 들으면서 홀로 조네/이만한 좋은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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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금천시 양천동|집성촌
고성산 산자락에 화순 최씨 일문 30여 가구가 올맘졸망 처마를 맞대고 있다. 30가구 1백50여명이 몽땅 한 핏줄이다. 입향조는 고려말 금산 지방에서 벼슬을 했던 최원지. 그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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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한말에 김규식이란 문관이 있었다. 그가 젊은 시절 등과한 후 운현궁에 문후를 올리러 갔다. 대원군은 인사를 받기는커녕 『세상에 저런 얼굴이 또 있을까』 라고 돌아앉았다. 그러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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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영광 김씨
영광김씨의 시조는 고려 성종∼현종대의 명신 김심언. 신라 경순왕의 네째아들 은세의 손자로서 일찌기 문과에 급제, 벼슬이 내사시낭평장사에 이르렀다. 금심언은 어려서 고려의 석학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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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167)-우주 황씨
우리 나라 황씨는 우주(우주)·장수·평해·창원·회덕·덕산 등 10여 본이 있으나 모두 한 할아버지에서 갈라진 자손. 도시 조는 중국 후한의 학사 황낙이다. 그는 신라 나리왕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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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4백30년전 황응청이 외가로 피해 정착한곳
우주황씨네 4백30여년 터밭이다. 김제읍에서 동쪽으로 뚫린 포장도로를 따라 8km, 끝없이 펼쳐진 들녘에 야트막한 산이 나타난다. 수동산(일명 사창산). 그 아래가 귀미마을. 1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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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부안 김씨
우리 나라의 김씨는 크게 두 갈래다. 가락국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계와 신라의 알지를 시조로 하는 경주 김씨계. 부안 김씨는 그중 경주에 연원을 두고 있다. 신라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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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 글, 사진 김국후 기자
선산 임씨는 경북선산을 본관으로 쓰면서도 정작 뿌리는 전남에 있다. 영암. 해남·강진·무안 등 주로 전남 서남부에 예부터 자리잡아 살면서 그 고장의 명문으로 꼽혀왔다. 현재도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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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의령 옥씨
의령 옥씨의 시조는 옥진서. 「당태종 9년 (635년) 사학의 유생을 가르치는 여덟재사중 한사람으로 뽑혀 고구려땅을 밟았고 의춘(지금의 의령)군에 봉작됐으나 고구려가 망하자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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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풍산 홍씨
풍산 홍씨는 고려 고종때 국학직학을 지낸 홍지경이 시조다. 안동 풍산에 터잡아 풍산을 본판으로 가문을 창립했다. 이후 7백 여년, 후손들이 남한에서만도 7천여 가구를 헤아려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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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울진 장씨
울진장씨의 본관을 처음 쓴 시조는 장말익. 고려정종때 문과에 급제, 호부상서·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로부터 36대까지 세계가 이어져 남한에만 2만여가구. 장천일(영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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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예천 권씨
예천 권씨는 본래는 권씨가 아니라 흔씨였다. 고려중엽 보승별장을 지낸 흔적신이 시조다. 그는 안동 권씨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아 외아들 득규를 낳았다. 2세 흔득규는 예천고을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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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비결』쓴 이지함
□…KBS 제1TV『역사드라머, 선구자』(8일 밤8시)=「흙집속의 신선(상)」『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선생의 일대기. 정초만 되면 마포나루 동막 근처의 흙집에 사는 이지함의 집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