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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풍산 홍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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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풍산 홍씨는 고려 고종때 국학직학을 지낸 홍지경이 시조다.
안동 풍산에 터잡아 풍산을 본판으로 가문을 창립했다.
이후 7백 여년, 후손들이 남한에서만도 7천여 가구를 헤아려 홍씨 가운데 남양 홍씨 다음의 숫자다.
2세 홍애는 고려문장 12대가의 한 사람. 3세 유와 4세 연·준은 모두 대제학에 올라 학문하는 집안의 전통을 다졌다.
고려말, 왕조는 기울고 이성계가 무력으로 새 왕조 창건의 야망을 드러낼 때 연의 아들 5세 귀는낭장의 벼슬을 버리고 경기 고양 고봉산 기슭으로 낙향, 은둔했다.
그의 큰아들 이는 멀리 호남 남평의 현령으로 갔다가 눌러앉아 생애를 마쳐 후손들이 광주·나주·함평·화순 등지에 흩어져 살게됐다.
둘째아들 의와 세째아들 초은 고양에 머물러 후손들이 서울·경기·충주·원주·천안 등지로 퍼졌다.
한편 4세 준의 후예 중 재는 여말 영남으로 옮겨가 그 후손들이 진해·양산·합천 등지에 자리잡게 됐다.
그 중에도 수가 많기는 호남쪽. 남한 전체 풍산 홍씨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고려의 충신 집안으로 조선조의 창업에 등을 돌렸던 풍산 홍씨네는 6·7·8세까지 3대를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지냈다.
그러나 조선조 중엽 명종무렵부터 다시 벼슬길을 열어 옛 명문가의 저력을 발휘해 중앙 정·관계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그 융성의 문을 연 사람은 홍이상. 난상형제.
그중에도 이상은 당대의 거유명신으로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고 임난 수습에도 그 공이 컸다. 슬하의 여섯 아들이 모두 영달하여 그 후손에서만 문과급체가 1백18명에 이르는 융성을 구가했다.
그중에는 홍양활·홍석주 등의 대학자·저술가도 있었고 저서와 문집을 남긴 사람만도 1백30여명이나 된다.
그러나 풍산 홍씨 영화의 극치는 정조초에 일세를 주름잡던 10년 세도의 홍국영. 의조의 사위인 영안위 홍주원, 정조의 사위인 영명위 홍현주등 부마와 정조의 외조인 부원군 홍봉한등 세번의 국혼까지 겹쳐 풍홍 영화는 하늘을 찌르는 기세. 달도 차면 기운다고 홍국영의 세도도 10년으로 끝났다. 홍봉한의 딸인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을 남겨 궁중비사를 전하며 국문학사의 백미를 장식했다.
이상의 아우 난상은 형조 좌랑을 지냈다.그 아들 홍보가 원주 목사로 있을 때 횡성의 도적 이인거를 토벌, 평정한 공으로 1등 공신에 책봉되고 담령 부원군으로 봉함을 받았다.
조선조 풍산 홍씨 문과 급제자는 1백36명, 무과에 오른 이가 92명이다. 그 중 재상이 다섯, 대장이 셋, 호당에 든 이가 둘, 봉조하가 여섯이나 된다.
그러나 홍씨 가문이 가장 크게 긍지로 삼는 것은 문명을 떨친 대대의 저술이다.
천조의 홍애집을 비롯하여 조선조 홍만종의 순오지와 명섭지해·역대총목·해동리적·소화시평·시화총림, 경종·순조때의 문호·학자 홍량호의 이계집·역상익·만물원시·육서경위·격물해·칠정변·목민대방·향약절중·해동명장부·고려대사기·삭방습유·북새기략·흥왕조승등의 저술들.
영조·헌종때의 좌의정으로 그 아우 길주·현주와 더불어「3문장」으로 드날렸던 연천 홍석주도 문집인 연천집외에 동사세가·학강산필등 20여종의 저술을 남겨 홍씨 집안의 저술만으로도 문고를 이룰 정도.
근세에 들어서도 풍홍의 저력은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일합방의 치욕에 분을 못이겨 자결한 홍범식, 중경 임시정부에서 국무령과 의정원 의장으로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던 홍진, 그리고 「조선삼천재」의 하나로 꼽히던 『임꺽정전』의 저자 홍명희등이 모두 풍산 홍씨다.
현재 각계에는 홍승식 전 재무장관·홍룡헌 전 외환은행장·홍석우 탐구당출판사 사장· 홍련석 서울 매원 사장·홍남순 변호사·홍승오 서울대 교수(불문학)·홍상헌 서울대 교수(공대)·홍정식 동국대 교수(불교학)·문학평론가 홍기삼씨등이 있다.

<지명인사>

<무순·종친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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