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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평양 다녀온 박헌영 돌연 "찬탁"|신탁통치 소용돌이(1)
해방의 해도 거의 저무는 45년 12월28일 밤 박헌영은 38선을 비밀리에 넘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 5명이었다. 어둠 속에서 몇 사람들이 나타나 이들을 맞았다. 일행은 소련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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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냉전으로 ″어부지리〃
일제말기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을 계속했던 4대세력은 과연 무엇을 이루었는가. 당시 4대세력 「김구와 임시정부」「무정과 화북조선독립동맹」「이승만과 구미위원부」「김일성과 항일유격대(빨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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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역사관은 수정주의 시각"|보수학계, 논문24편 실은 반 논서『해방전후사의 쟁점…』출간
보수적인 성향의 정치·역사학회 기성학자들이 그 동안 해방전후의 역사연구를 주도해온 진보적 소장학자들의 연구성과를 포괄적으로 반박하는 두 권의 책을 발간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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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67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반탁주도 김구 미에 미움사/송진우 암살로 테러위협 느낀 공산당간부 잠적 신탁통치에 대한 임정 비상회의 석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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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상·정국현안 입장정리|수권채비 서두는 민주당 정책세미나
○…민주당은 6,7일 이틀간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가진 정책세미나를 통해 당의 위상·노선정립 등 「이론적 체제정비」및 중간평가. 5공 청산·지자제·통일·민생문제 등 정국현안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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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독립운동 전개하겠다" 이철승의원
○…이철승의원등 반탁운동 주도세력과 이들의 2세및 기타청년학생들은 반탁·반공정신을 계승한다는 기치로 24일 자유민주총련맹을 결성했는데 「「정일권씨 중심의 자유수호구국연합회와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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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좌·우 합작
해방 이듬해, 1946년 5월에 김규식과 여운형을 중심으로 시작된 좌우합작운동은 이 시기의 정계에 형성되어 가던 중도적 정치세력을 중심으로한 하나의 정치운동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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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444)|전국학연(제47화)|나의 학생운동 이철승
「전학련」 탄생(상) 1946년 7월31일 하오2시-. 화신 뒤 인사동에 있는 중앙예배당에서 「전국학련」 결성대회가 열렸다. 예배당 안팎은 옆 골목까지 젊은 학생들과 방청인들로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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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연-나의 학생운동 이철승|남기고싶은 이야기들(1440)
46년2월20일께 학연본부에 한 장의 긴급전보가 날아왔다. 발신인은 광주 장충직, 내용은 반탁학련 광주연맹을 결성코자하니 본부지원을 요망한다고했다. 학연본부를 결성한지도 얼마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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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 | 전국 학병 (43)|나의 학생 운동 이철승
탁치 문제를 놓고 좌우당의 전위 세력이 실력 대결을 하게된 l·18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강연회가 1월26일 다시 정동 예배당에서 열렸다. 임평기 군의 사회와 필자의 개회사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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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17)
여기서 잠시 미·소 공위를 둘러싼 이승만과 김구의 입장 및 그들의 의중을 살펴보기로 하자. 47년 8월 12일 공위가 무기 휴회에 들어가고 남로당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이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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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개헌실비(2)
정치파경을 유발하게 한 국회와 정부의 대립은 이미 제헌국회 때부터 싹텄다. 그러나 건국초기에 적어도 국회 안에는 이승만 박사를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48년7월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