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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침목, 석유 찌꺼기, 돌멩이…묵묵히 쓸모 다한 것들, 하찮다고 무시 말라
정현 개인전 《덩어리》 전시 전경. 1905년 벨기에 영사관으로 지어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2층에 채색한 스티로폼 조각들이 놓였다. 사진 임장활 노량진 수산시장을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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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권진규, 조각의 경계를 넓히다
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바람이 찬 봄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이르면 ‘한국적 리얼리즘’의 대표적 조각가 권진규(1922~1973)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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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이’다…흙으로 영원을 빚은 권진규
기사, 1953, 안산암, 62.0x65.0x29.0㎝.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는 스스로를 ‘장이’라고 했다. ‘(나는) 조각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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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흙으로 영혼을 빚고 싶었네....영원을 꿈꾼 조각가 권진규
기사, 1953, 안산암,, 62.0x65.0x 29.0cm.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 · 이정훈] 1955년 배나무로 깎아 만든 보살입상.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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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비운의 천재’가 아닌 삼촌
권진규 권진규 허경회 지음 PKM BOOKS “그가 천재였나? 잘 모르겠다…기발함, 번득임, 날렵함, 귀기 서림 등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둔해서인가, 나는 권진규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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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로 불리는 삼촌..."그는 천재도, 비운도 아니었다"[BOOK]
책표지 권진규 허경회 지음 PKM BOOKS "그가 천재였나? 잘 모르겠다…기발함, 번득임, 날렵함, 귀기 서림 등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둔해서인가, 나는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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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미술관 건립은 언제?...작품들 유족에게 다시 가는 사연
권진규, ‘지원의 얼굴’ 1967년작, 테라코타, 50x32x32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작품 700여점이 춘천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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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맥주회사의 미술 사랑
한국 근대조각의 주춧돌을 놓은 조각가, 테라코타와 건칠(乾漆)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개척한 장인, 자살로 삶을 마감한 기인-. 권진규(1922~73)는 우리 미술사에서 일종의 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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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 죽음만 보고 ‘비운의 권진규’라 할 순 없죠
자신을 모델로 한 권진규의 1967년 테라코타 작품 ‘지원의 얼굴’ 앞에 선 장지원씨. 왼쪽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오른쪽이 이번 전시로 발굴된 개인 소장가 작품이다. [국립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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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단신] '문화 유산 교육' 세미나 外
◆'문화 유산 교육' 세미나 문화유산시민단체인 ㈔한국의 재발견은 14일 서울 필동 한국의집에서 '문화유산 교육의 이해와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연다. 유네스코 한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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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30주기 조각展] 시대적 우울함과 고뇌가 빚은 리얼리즘
조각가 권진규(權鎭圭.1922~73)는 쉰한 살 나이에 자살했다. "한국에서 리얼리즘을 정립하고 싶다"는 신념을 고독하게 실천하던 서울 동선동 작업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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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박생광·장욱진전 가나아트서 2일부터
73년 5월4일 오후5시. 조각가 권진규는 서울 동선동 10평 남짓한 그의 집이자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85년 7월18일 새벽4시. 병든 몸 (후두암) 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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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권진규-박용숙
권진규씨를 처음 만나게된 것은 71년12월에 있었던 명동화랑의 개인전 때였다고 생각된다. 나는 그때 중앙일보를 통해 막 미술평론가로 데뷔한 때였고 그는 일본에서 귀국한지 2년쯤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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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는 권진규|"작품교섭 받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던 모습 눈에 선해"|이규호 서양화가
나와 권진규는 그가 귀국 후에 가진 세번째 개인전(명동화랑)때에 더욱 가까워 졌으며 그후 본인이「자신의 목숨은 자기 스스로가 다스린다」고 입버릇처럼 하면서 끝내 이 세상을 하직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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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규아저씨는 나보다 한 살 위지만 항렬로는 삼종숙뻘이다. 어린 시절 문중의 시제나 잔치 때 만나보곤 했는데 정작 나와 가까이 지내게 된 것은 해방 후 부산피난시절이었다. 진규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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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유준상
테라코타 조각가 권진규를 처음 만난 건 1965년 초가을 신문회관 (지금의 프레스센터) 화랑이었다. 그는 러닝셔츠를 흠뻑 땀으로 적셔가며 리어카로 손수 실어온 조각작품을 전시장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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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권진규씨 1주기 추모전
예술가생활에 절망해 작년 5월4일 그의「아틀리에」에서 5l세의 한창 일할 나이로 자결했던 조각가 권진규씨의 1주기 추모전이 명동화랑의 주선으로 마련된 것은 미술계의 따뜻한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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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상업미술상
「오일·칼라」냄새가 불씬 풍긴다. 80평 남짓한 작업실. 왼손에 「페인팅· 나이프」, 또 다른 손에 화필을 움켜쥔 40여명의 화가들이 소리 없이 작업에 한창이다. 여느 순수화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