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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비운의 천재’가 아닌 삼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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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호 21면

권진규

권진규

권진규
허경회 지음
PKM BOOKS

“그가 천재였나? 잘 모르겠다…기발함, 번득임, 날렵함, 귀기 서림 등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둔해서인가, 나는 권진규에게서 그런 것들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대신 묵직함을 느꼈다…묵직한 입과 행동으로 그는 한길을 갔다. 다른 길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조각가 권진규(1922~1973)를 이렇게 회고하는 사람은 그의 외조카이자 이 평전의 저자다. 그의 말마따나 “생전에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냉대를 받았고 스스로 목숨을 마감한 이력”과 함께 권진규는 흔히 “비운의 천재”로 불려온 터.

1971년 권진규가 작업중인 서울 동선동 아틀리에. [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

1971년 권진규가 작업중인 서울 동선동 아틀리에. [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

그러나 그 생의 마지막 4년을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저자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권진규에게서 “비운” 대신 “투혼”을 본다. 권진규는 미술학교를 나온 일본에 머무는 대신 어떤 이유로든 한국에 돌아왔고, 당시 추상 조각 흐름 속에서 꿋꿋이 구상 조각 작업을 했다. 저자는 “천재”보다 “천착”으로, “예술가”보다 “장인”으로 그를 설명한다.

흙으로 빚어 불에 구운 테라코타, 틀 안에 켜켜이 삼베를 붙이고 옻칠을 거듭한 건칠 등 제작 전 과정에 그의 손길이 닿은 것을 떠올리면 좀 더 쉽게 수긍이 간다. 생전에 권진규 자신도 “조각가가 아니라 장인”을 자처했다. 저자가 한국과 일본의 교과서에 권진규의 대표작으로 실린 ‘지원의 얼굴’ 못지않게 ‘손’을 주목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동안 소장처를 몰랐던 ‘손’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목록에서 확인됐다.

1959년 부인 도모와 함께인 권진규. 권진규가 귀국하던 날, 하네다 공항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

1959년 부인 도모와 함께인 권진규. 권진규가 귀국하던 날, 하네다 공항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

저자는 기존의 전기를 포함해 여러 문헌과 자료를 섭렵하고 이 평전을 썼다. 권진규의 삶과 주요 작품을 시간 순서로 소개하되, 사계절로 단락을 나눴다. 같은 무사시노 미술학교를 다닌 도모와 연인으로, 부부로 함께한 시기는 가난해도 행복했으니 그야말로 봄. 길진 않았다. 한일국교 정상화 이전인 1959년, 권진규는 일본인 아내를 두고 혼자 귀국했고, 5년 뒤 장인이 보낸 이혼서류에 서명한다. 두 사람이 재회한 건 도쿄에서 권진규 개인전이 열린 1968년.  저자는 도모와의 만남을 기대했을 권진규의 마음을 이 전시에 선보인 작품 ‘재회’를 통해 상상하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는 전문 연구자와 달리 좀 더 자유로이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상과 해석을 들려주곤 하지만, 전기적 사실은 가능한 객관적인 문체로 서술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권진규 누이, 즉 저자 어머니나 저자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전할 때 3인칭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담담히 쓰여있는데도, 이 책의 몇몇 대목에서는 속절없이 마음이 아려온다. 한국에서 열린 개인전은 세 차례. 작품은 대부분 팔리지 않았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의뢰인에게 사실상 퇴짜를 맞았다. 그런 와중에도 작품을 사준 이가 있었다. 작품을 기증한 대가로 약간의 돈을 준 곳도 있었다. 누이에게 뒷일을 부탁하는 글과 함께 남긴 돈은 그렇게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권진규에게서 저자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겨울 참나무”다. 벌거벗은 몸통과 가지가 품은 힘을 통해 겨울을 견뎌 다음 계절을 맞기도, 그 힘이 다하면 겨울을 나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비유적 시각이 후세의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몰라도, “비운의 천재”라는 기존 프레임과 사뭇 다른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미술관 건립을 기대하며 넘겼던 권진규 작품들이 대부업체 담보물이 됐던 일은 자칫 비운에 그림자를 더할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되찾은 141점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됐다. 이를 포함해 권진규의 탄생 100주년 대규모 회고전이 이달 말 개막한다. 권진규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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