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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인의 조선가족실록] “나는 아들이 없습니다…” 다산 뒤흔든 형수의 눈물
━ 예법에 맞선 정약용 집안 여인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아주버니여, 나를 살려주시오. 아주버니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오. 나를 돕지는 못할망정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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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세발나물, 진도 봄동…남도에 퍼지는 달큰한 풋내
봄을 느끼고 싶다면 남도로 가보자. 아직 꽃이 흐드러지진 않았어도 푸릇푸릇한 들녘에서 봄기운이 피어난다. 사진은 전남 진도군 군내면 봄동밭. 최승표 기자, [중앙포토] 봄은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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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틔운 보리, 푸릇한 봄동…유달리 추웠던 남도 찾아온 손님
봄동은 진도를 대표하는 작물이다. 12월부터 재배하지만 겨울 추위를 이겨낸 이맘때 봄동이 단맛이 강하다. 진도 군내면 봄동밭에서 농민들이 분주하게 봄동을 수확하는 모습. 최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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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200년 전 다산 정약용이 삼킨 강진 아욱국
━ 손민호의 레저터치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처음 4년을 살았던 강진읍성 동문 밖 주막. 대역죄인에게 방 한 칸을 내준 주모와 주모의 딸 동상이 주막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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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다산 유배·해배길 걷기 … 청렴정신 널리 퍼졌으면
━ [박정호의 사람풍경] 윤동옥 다산동호회장 전남 강진군 다산초당을 찾아가는 길. 몸체를 어지러이 드러낸 나무뿌리를 밟지 않으려, 또 무수히 박힌 돌 조각을 피하려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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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 남양주까지 … 다산 해배 200년을 걷다
1818년 다산(茶山) 정약용은 18년간의 전남 강진 유배 생활을 마쳤다. 그 해 음력 9월 2일(양력 10월 10일)을 강진 다산초당을 떠나 9월 14일 경기도 남양주 생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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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해배 200년, 그 길을 따라 걷다
다산이 숱한 저작을 남긴 전남 강진 다산초당. [중앙포토] 1818년 다산(茶山) 정약용은 18년간의 전남 강진 유배 생활을 마쳤다. 그 해 음력 9월 2일(양력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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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체험 어디까지 해봤니…정약용 선생 시대로 가보자
남양주시 다산문화제. 곤장체험. [사진 남양주시] 조선시대 옷을 입고 당시의 저잣거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경기도 남양주시는 14∼16일 조안면 다산(茶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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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관훈클럽 外
◆관훈클럽(총무 박승희 중앙SUNDAY 편집국장)은 17일 오전 10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초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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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外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관세)는 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극동문제연구소에서 ‘2018년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제61차 통일전략포럼을 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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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백성 윤택하게 … ” 다산 숨결 고스란히
올해는 경기도 남양주시가 정한 ‘정약용의 해’다. 남양주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고향이다. 팔당호 주변인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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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200년 전 ‘목민심서’ 쓴 다산 숨결 느껴봐요
다산 정약용 선생 초상화. [사진 남양주시] “딱 200년 전 공직자의 필독서 ‘목민심서(牧民心書)’ 를 쓴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선생의 숨결을 경기도 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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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나라 통째로 바꾸자던 실학자 정약용의 사자후 생생히 들리는 듯…
━ 『경세유표』 저술 200주년, 다산학의 고향을 찾아서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에 있는 다산초당 주변을 둘러보는 박석무 이사장(오른쪽 넷째)과 답사객들. 앞쪽 돌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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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와 사람] 봉황이 구름과 노닐듯 오묘 … 스물넷 추사, 차 사랑 시작
추사 김정희의 차에 대한 깊이가 더해진 건 제주 유배 시절이다. 척박한 유배지는 견디기 쉬운 환경이 아니었기에 울분을 차로 달랬다. 그림은 제주 유배 시절 남긴 걸작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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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이 구름과 노닐듯 오묘…스물넷 추사, 차 사랑 시작
조선 후기 문예를 이끈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음다(飮茶)의 즐거움을 체득했던 인물이다. 대흥사 승려 초의(草衣·1786~1866)와 함께 민멸 위기에 놓인 조선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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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와 사람] “100근이라도 사양 않을 텐데” 차 욕심 못 감춘 다산
1 초의가 그린 다산도(개인 소장).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차의 실용을 제안해 국익과 민생에 도움을 주고자 했던 다인(茶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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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춘의 차와 사람 다산 정약용과 차
다산 정약용(茶山丁若鏞·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차의 실용을 제안하여 국익과 민생에 도움을 주고자 했던 다인(茶人)이다. 그의 충직함과 박학다식한 면모를 아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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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개혁, 지금 아니면 망한다" 200년 전 경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김호석 교수가 그린 다산 정약용 초상화. 다산은 유배 시절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에 1000여 권의 책을 쌓아놓고 집필에 몰두했다. [중앙포토] 다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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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힐링투어] 막막한 18년 세월, 다산은 인연 쌓으며 견뎠으리라
다산 정약용이 10여 년 머물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권이 넘는 저작을 남긴 다산초당. 다산학의 산실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연못도 파고 채소도 길렀다.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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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힐링투어] 강진땅 어떤 힘이 세상 끝에 선 다산을 살게 했을까
다산이 강진에서 꼬박 4년을 머물렀던 주막집. 천장 낮고 협소한 주막집 행랑채를 다산은 ‘사의재’라 불렀다. 사의재에는 생각·용모·언어·동작 네 가지를 반듯이 해야 한다는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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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도, 사마천도 울었다 … 세상의 '平'을 위하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편지에 자녀 교육법이 담겨 있다. 네가 관심이 있으면 스스로 연구를 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될 때까지 한번 해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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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먹는 서생… 노인… 신선… 상대방 맞춰, 상황에 따라 변신
관련기사 343개 이름처럼 살다 『완당 평전』에서 유홍준 교수는 “추사를 아는 사람도 없고 모르는 사람도 없다”고 우리 시대 안목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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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流配 (유배)
왕권을 분점하라 - 조선 500년 동안 궁중세력의 최종 목표가 이것이었다. 왕권을 나눠가진 실세집단은 패배집단에 사약을 내렸다. 조선은 유배사회였다. 유배로 권력투쟁의 화마(火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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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정치와 사상"정석종著
정치에서는 권력을 어느 집단이 장악하느냐에 따라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 사뭇 달라질 수 있다.과거 동서양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여러세력 사이에 서로 유리한 조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