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356)|제76화 화맥인맥 월전 장우성(75)|정읍 충열사
서울대미술대학을 그만 두고 서울 관훈동 민씨네 집 2층에 화실을 낸 나는 미국에 가서 전시할 작품제작에 몰두했다. 한편으로는 영어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주일에 한두 번씩 출
-
(4)자유분방하면서도 테두리 지켜야
앞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시조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서 우리 민족의 모든 내재율이 담겨진 그릇이다. 혹자는 지금같이 문물과 사고가 복잡 다단하고 자유분방한 현대에 있어서 정형 속에
-
직장별 단체 분향 늘어|각국의 국장선례 다각 검토|최 대행, 내각 정상기능 확인|"유지받들어 열심히 일하겠다" 새마을 지도자
육사 2기생 40명도 분향 ○…박 대통령 서거 닷새째인 30일 상오 청와대 본관 빈소에는 정일권 전 국회의장내외, 김진만 의원, 황산덕 전문교장관, 김영준 한양대총장 등이 조문,
-
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사사 40년대 「문장」지 주장-제58화
우리나라 신문학 70년 동안에는 문인과 문인사이에 얽혀진 우정가화도 적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무애 양왕동과 노산 이은상 사이처럼 숱한 일화를 남겨놓으며 7O평생을 지기로 살아온
-
(2099)>|문예지를 통해 본 문단비사 20년대「조선문단」전후(5)|박화성|서해와의 대화
『아녜요. 저 길 잘 알아요. 혼자 가겠어요.』 나는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그러나 최서해는 벌써 납작한 중 모자를 얹어 쓰고 일어섰다. 『고집 피우지 말 구 호위 받아 편안히 가시
-
반세기만의 숙원…「구마 고속」 84km가 뚫렸다
구마 고속도로가 개통된다. 『이 길은 금수강산을 누벼 가는 길이요/고을마다 문화의 전통이 깃든 길이며/다시 그대로 경제 발전의 대동맥이요/새 시대 문명을 실어오는 지름길이라/즐거운
-
「민족시조」모집 민족문화협회서
사단법인민족문화협회(회장 이은상)는 77년도 「민족시」시조짓기대회를 오는 10월3일 상오9시 경북궁 근정전에서 열기로 결정, 예선 응모작품을 모집하고 있다. 마감은 8월31일, 접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516)|등산50년(제48화)
이튿날 1월4일 오세암을 일찍 떠난 우리는 해가 비칠 무렵 만경대에 올라섰다. 외설악의 만경대는 구름속에 놓여 있었지만 이 내설악의 만경대는 그야말로 내설악의 군봉동계들을 한눈에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금강에서 일으켜 세워진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불과 1백여리를 못가 또 한번 극치에 이른 조화의 묘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설악산이다. 설악산은 남한에서는 한라산·지리산다음으로
-
-노산 이은상
> 나는 불타의 열반상 앞에 서서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불타야말로 초인간인데, 왜 죽음을 피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불타가 죽은 것은 업으로 생겨난 육신일 따름이요, 진리의 법신이
-
불원성지순례기 24 (제자·이은상) 노산 이은상
나는 마지막으로 불타의 제4성지인 「쿠시나가라」(구시나게나)를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그곳이 불타가 마지막 열반하신 곳이다. 다만 그곳의 방향이 제3성지인 「사르나트」(녹야원)와는
-
(23)「사르니트」(4)
나는 불타의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녹야원) 경내에 「쟈이나」교(각이나교, 혹은 기나교로 번역됨)의 사원이 같이 섞여있는 것을 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우기 이 종교는 인도
-
(22)「사르나트」(3)
나는 「사르나트」(녹야원)의 황폐한 언덕에 서서 문득 생각해본 것이 있었다. 불타가 35세에 성도한 이후 80세에 열반에 들기까지 자못 45년 동안 이곳 저곳에서 설법할 적에 아무
-
(21)「사르나트」(2)
나는 「사르나트」(녹야원) 폐허에 서서 불교에서 이르는 「전법륜」이란 것을 생각해 보았다. 불타가 이곳에서 설법한 것을 전법륜이라 일컫기 때문이다. 법륜은 범어 「다르마차크라」를
-
(20)「사르나트」(1)
나는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5km쯤에 있는 「사르나트」(녹야원)에 이르렀다. 그곳이 바로 내가 목적하고 간, 불타의 4대성지 중, 제3성지인 최초 설법지인 것이다. 일찌기 불타
-
(19)「바라나시」(3)
「바라나시」는 불교의 유적지인 동시에 「힌두」 대학교가 있어 동서양의 학문을 합성 창조한다는 것으로써 목적을 살기도 하고, 또 「산스크리트」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가장 권위 있는 곳
-
(18)「바라나시」(2)
불교와 호국사상은 결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요. 또 불타의 교법을 출세간적이라 하여,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폐기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도 안되는 것이니, 우리는 불타의 행적에서 이
-
(17)「바라나시」(1)
나는 불타의 성도지인 「부다가야」의 대각사 경내를 벗어나 40리를 도로 올라가 「가야」에서 밤을 지나고, 불타의 첫 번 설법지인 「사르나트」(녹야원)를 찾아가기 위해 그곳에 가까운
-
(16)「부다가야」에서(3)
나는 불타가 성도한 자리라고 일컫는 금강좌 앞에서 발을 떼어, 버선발 그대로 도장 경내를 돌아다녀 보았다.. 금강좌 곁에 높이 솟은 「마하보디상가라마」(마가보제승가남)는 한문으로
-
(15)「부다가야」에서(2)||노산 이은상
나는「보디」나무 그늘 밑, 불타가 앉았던 자리라고 전하는 금강보좌 앞에서 잠깐동안이나마 불타의 성도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불타의 성도에 대해서,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
(13)「가야」로 가는 길(2)||노산 이은상
「라즈기르」(왕사성)에서 남으로 64㎞를 내려가면「가야」(가야)라는 큰 도시가 있다. 인구는 15만 명이나 되는데 구 시가와 신시가로 나누어져 있어 구 시가는 토착 인도인들의 주택
-
(12)「라즈기르」에서(1)||노산 이은상
나는「라즈기르」(왕사성)거리를 거닐면서「빔비사라」왕(빈비사나 왕)의 불교귀의와 아울러, 그의 아들「아쟈타사트루」왕(아합세왕)이 자기의 죄를 참회한 후 오히려 불타의 교단을 위해 큰
-
(10)|성도지 부다가야 (6)|노산 이은상
최고운의 진감 선사 비문에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아니하고, 사람은 서로 다른 나라가 없다.』라 한 말 그대로, 과연 종교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라 사람들이 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