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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령문에 쓰인 김일성 필력

    북괴는 6·25동란 중 북괴군「집단사령관」앞으로 보낸 김일성의 자필「메모」지령문을 평양에 있는 소위「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진열, 보물취급을 해오고 있음이 3일 밝혀졌다. 내외통

    중앙일보

    1976.08.03 00:00

  • 6·25 전적지 개발의 의의

    정부가 추진키로한 6.25 전적지 개발사업은 전적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켜 국가안보의식을 제고시키고 나아가 부족한 관광자원을 개발한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6

    중앙일보

    1976.07.28 00:00

  • (101)전국학련

    특무대에 파견된 1백여 학생들의 활동무대는 주로 대구교외 동촌 비행장 주변-. 당시 동촌 비행장은 미군 보급물자의 집산지로 그 주변이 온통 피난 민촌이 돼있었다. 이들은 허름한 옷

    중앙일보

    1975.11.15 00:00

  • 6·25와 학련(2)

    갈길이 바쁜 나는 아내를 전남벌교친척집으로 보냈다. 그때만 해도 벌교쯤은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대구에 온 나는 동성로 2가 동인치과에 학련 임시본부를 만들고 동지규합에 나섰다. 서

    중앙일보

    1975.11.14 00:00

  • (842)|내가 아는 박헌영(161)|박갑동

    패퇴하여 만주까지 도망치게 되어 궁지에 빠진 김일성은 전쟁을 중간 결산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회 전원회의의 보고문안을 기안할 권한까지 잃고 그 기초를 부위원장인 허가이에게 위

    중앙일보

    1973.09.07 00:00

  • (841)|내가 아는 박헌영(160)|박갑동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이른바 북한노동당의 무력통일기도는 한국국민의 완강한 항전과 「유엔」군의 개입에 의하여 완전히 파탄되고 말았다. 한국국민은 기습을 당하여 한때 수도 서울시를

    중앙일보

    1973.09.06 00:00

  • (837)|내가 아는 박헌영(156)|박갑동

    김일성은 이 사건을 뒤에 박헌영에게까지 둘러 씌웠다. 북한의 재판기록에는 제1권 154∼155「페이지」이승엽이 이렇게 자백하였다고 쓰고 있다.『나는 1950년 7월 하순께 안영달

    중앙일보

    1973.09.01 00:00

  • (836)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55)

    8월15일에는 서울에서 통일 축하 해방기념식을 대대적으로 하겠다고 김일성은 계획하였으나 그 8월15일이 되어도 낙동강은 한발도 건널 수가 없었다. 8월15일까지에는 전국을 점령하

    중앙일보

    1973.08.31 00:00

  • (432)통신|지원작전

    「통신」은 공병처럼 기술과 전투를 겸하는 주요 지원병과다. 근대전에서 통신은 일선부대지휘나 전후방의 연락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뇌신경」인것이다. 통신병은 작전수행을위해 보병전투

    중앙일보

    1973.03.07 00:00

  • (428)지원작전⑭|병기(2)

    총은 군인의 제2 생명이며 전장의 소중한 「애인」이다. 그러기에 육군병기학교장 장희준 소령은 6월말 수원비행장에 공수돼온 탄약의 운반집적을 진두 지휘하면서 마지막 한정의 기관총을

    중앙일보

    1973.02.23 00:00

  • (427)지원작전(13)병기(1)

    1억4백13만6천8백48발. 이것은 6·25전쟁 첫 1년 동안에 우리 한국군이 소모한 M.1실탄의 숫자로「지연」과「총반격」작전에서 탄약은 실로 무제한으로 소모됐다. 「병기」는 ①화

    중앙일보

    1973.02.21 00:00

  • (424)지원작전(10)|병참(1)

    병참은 보급 지원의 핵심병과로서 5개 종목의 군수 보급품 중 제5종(탄약)을 제외한 제1종(주·부식), 제2종(피복), 제3종(유류), 제4종(장비 품)의 조판과 보급을 담당하며

    중앙일보

    1973.02.14 00:00

  • (423)지원작전(9)|공병(3)

    공병의 보병전투는 50년7월 하순부터 9월초 사이의 낙동강 방어전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특히 제1201 건 공단과 제8사단 공병대대는 구산동 전투와 영천작전을 통해 전사에 길이

    중앙일보

    1973.02.09 00:00

  • (421)지원 작전(7)

    (1) 공병은 다른 병과와는 달리 「기술」과「전투」를 겸하는 준 전투 병과로서 도로를 보수, 확장하고 교량을 가설하며 축성 공사 등으로 보병 부대를 지원하는 본연의 임무와 더불어

    중앙일보

    1973.02.05 00:00

  • (419)지원작전(5)|군수보급(5)

    「작전」과「보급」은 바늘에 실이 따르듯이 전투수행에 있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선 보병부대 작전을 바로 뒤에서 지원해 줘야하는 사단이나 군단의 군수보급 장교들은 부대가 일시에

    중앙일보

    1973.01.31 00:00

  • (418)군수보급(4)|지원작전(4)

    실탄 없는 총이 아무 쓸데없는 것처럼 군수보급이 뒤따르지 않는 작전이란 있을 수 없다. 물자의 대량 소모를 수반하게 되는 현대 국지전은 군수보급상태에 따라 전세가 좌우될 때가 많다

    중앙일보

    1973.01.26 00:00

  • (417)지원작전(3)|군수보급(3)

    부산항에 산적된 미 군수물자들은 다시 육로와 해상을 통해 신속히 전방으로 수송 됐다. 한국군에 대한 수송·보급은 주로 우리 육본 군수 국과 해군수송선들이 담당, 추진했다. 인사(G

    중앙일보

    1973.01.22 00:00

  • 풍수해 경계령 장마 앞두고

    치안국은 27일 장마전선의 북상을 계기로 전국 4천3백58개소의 수해위험지구에 대한 풍수해 대책 경계령을 관하경찰서에 내렸다. 치안국의 경계령에 따르면 50mm이상의 폭우가 쏟아질

    중앙일보

    1972.06.27 00:00

  • B-29 폭격기|퇴역한 「하늘의 요새」 20년 만에 서울에 오다.|글 이두석기자·사진 송영학 기자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 동난을 통해 『하늘의 요새』로 군림했던 B-29 폭격기가 휴전 19년만에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차이너·레

    중앙일보

    1972.06.24 00:00

  • (323)|하늘의 전쟁(14)|미그 통로의 공중전

    미 공군이 한국전쟁에서 공산군을 격파하는데 큰 몫을 했다는 것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 미 공군은 북괴 남침 후 해군과 함께 6월27일부터 한국전에 개입, 4∼5일 안에 2백여 대의

    중앙일보

    1972.05.08 00:00

  • 민족의 증언 목차|4월3일로 총 310회 연재

    ▲가장 길었던 3일(37회) ①=전선과 경무대표정 ②=토요일의 심야 파티 ③=육본의 대책 ④=심야의 비상각의 ⑤∼⑦=국회의 수도사수결의 ⑧=정훈국과 KBS ⑨=대통령의 전화방송 ⑩

    중앙일보

    1972.04.03 00:00

  • (421)경무대사계(48)황규면

    부산 피란 시절의 대통령관저는 경남 도청 뒤에 자리잡은 지사관사였다. 이대통령은 이 지사관사의 조그마한 방에서 집무했다. 너무도 초라한 집무실이어서 우리비서들이 민망할 정도였다.

    중앙일보

    1972.03.30 00:00

  • (420)경무대 사계(47)황규면

    정부가 대구로 옮겨진 후 낙동강전선은 적의 계속된 공세로 위험한 지경에 빠졌다. 괴뢰군은 왜관·성주 등지에서 대구를 향해 집중포격을 가해와 문자 그대로 함락작전의 위험에 빠졌다.

    중앙일보

    1972.03.29 00:00

  • (299)휴전회담의 개막(13)

    7월27일의 5개 항목의 의제채택에 이어 28일의 제12차 회의부터 「군사분계선」 구획문제 토의에 들어갔는데 예상한대로 쌍방은 팽팽히 맞서 끊임없는 논쟁을 벌였다. 이때부터 한국휴

    중앙일보

    1972.03.0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