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구권 8억 달러 당시 우리돈 2160억 지금 물가로 8조, 예산 기준으론 327조
1965년의 대일(對日) 청구권자금 8억 달러는 당시 환율(달러당 270원) 기준으로 2160억원에 해당한다. 몇 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현재 가치를 따져봤다. 국내 물가상승률을
-
구보다 “일제 36년, 한국인에게 이익” 망언 … 홍진기 “우리 스스로 근대화했을 것” 반박
한국과 일본 간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담은 이승만 정부 때인 1951년 10월 20일 시작됐다. 그러나 61년 5·16 뒤 박정희 군사혁명 정부가 6차 회담을 열기 전까지 협상은
-
한·일 협정 주역 JP, 아베에게 충고하다
올해는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정상화된 지 50주년 되는 해다. 한·일 협상의 돌파구를 열었던 김종필(JP·얼굴) 전 국무총리는 26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인 아베 신조(安倍
-
"황은 신문 내내 묵비권 … 간첩으로 결론"
1962년 초 주한 미군은 황태성을 신문했다. 그때 조사를 담당한 사람은 502군사정보단 소속 마이클 리(82·사진)였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지난 6일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
"황태성은 큰 간첩 … 밀사 아니다" 50년 논쟁 결말
밀사(密使)냐, 간첩이냐’-. 황태성 사건의 50여 년 논쟁의 결말을 짓는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증언이 나왔다. JP는 21일 “북한 김일성은 5·16 혁명지도자 박정희
-
교사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입학 때, 황태성 "가서 힘을 키워 때를 기다려라"
황태성 사건에 얽힌 ‘남쪽 두 사람’ 김민하(세계일보 회장·가운데·), 권상능(조선화랑 대표)씨. 지난 8일 조선호텔에서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왼쪽)와 만나 반세기 전 사건을 회
-
"북에서 황태성 내려왔습니다" 박정희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박정희 최고회의의장(左), 황태성 무역성 부상(右)5·16 성공 100여 일 뒤인 1961년 8월 말, 북한 무역성 부상(副相·차관)을 지낸 황태성이 휴전선을 넘는다. 그는 박정희
-
"박정희 잘 안다" 김일성 남파 승인 … '밀사'로 자처했지만 간첩죄로 처형
황태성과 친구였던 박정희의 셋째 형 박상희.황태성은 1961년 55세 때 남파된다. 그 이전 행적은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제시대 경기도 경찰부가 작성한 ‘감시대상
-
[漢字, 세상을 말하다] 心平氣和
지난달 초부터 중앙일보에 연재되는 우리 현대사의 산증인 김종필 회고록이 세간의 화제다. 그 동안 잘못 알려져 있었거나 또는 새로 밝혀지는 내용이 하나 둘이 아니라 독자의 관심이
-
[漢字, 세상을 말하다] 心平氣和
지난달 초부터 중앙일보에 연재되는 우리 현대사의 산증인 김종필 회고록이 세간의 화제다. 그 동안 잘못 알려져 있었거나 또는 새로 밝혀지는 내용이 하나 둘이 아니라 독자의 관심이 지
-
이병철 "국가 대본에 필요하면 국민 납득시키는 게 정치"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1986·사진)에서 박정희 최고회의 부의장과 첫 만남(1961년 6월 27일)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비서실을 거쳐 안내된
-
박영옥 말라리아 걸리자 JP, 돌봐주다 사랑 싹터 … 박정희 "친딸 같은 조카"
김종필 전 총리가 결혼 직후인 1951년 초봄 아내 박영옥 여사와 대구 달성공원에서 포즈를 취했다.김종필(JP) 전 총리가 아내 박영옥 여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50년 6·25가
-
육사 8기 경쟁률 10대 1 … 졸업생 1263명 최다
육사 8기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태릉 육군사관학교 본관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8기생은 졸업생이 1263명으로 역대 육사 기수 중 가장 많았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
캐머런 등 총리만 18명 배출한 영국 명문 학교
JP가 청년 시절 동경했던 이튼(Eton) 스쿨은 런던 서쪽 소도시 이튼에 있는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다. 정식명칭은 이튼 칼리지(College)다. 1440년 헨리 6세가 설립했다
-
‘장면 총리 퇴진시키고 장도영 옹립’ CIA 서울 요원 또다른 쿠데타 준비
1961년엔 박정희 소장이 준비하던 5·16 말고도 또 다른 쿠데타설이 난무했다. 해병대 궐기설, 족청(族靑)계 거사설 등이다. 김포의 해병1여단에선 오정근 대대장, 조남철 부연대
-
중정 창설자 JP "국정원 수사권 검찰에 넘겨야"
김종필(얼굴) 전 국무총리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의 수사권을 검찰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해외·대북정보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이후락 79호실·정보연구위 정보부 만들 때 참고 안 했다"
1961년 중앙정보부 출범 전에도 국내에 정보기관은 있었다. 이승만 정권의 국방부 ‘79호실’과 장면 정권의 총리실 직속 ‘중앙정보연구위원회’다. 두 기관 모두 책임자가 이후락(1
-
윤보선 돌발 하야 성명 … 김용식 '외교 논리'에 퇴진 번복
5·16 나흘째인 5월 19일 돌발사건이 있었다. 오후 8시30분 윤보선(사진)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전날 장면 총리 내각이 총사퇴한 지 32시간 뒤다. 성명은 이러한
-
군사 혁명정부 지키기 위해 수방사 창설 … 한국군, 독자적인 작전권 행사 계기 돼
1961년 6월 1일 후암동 미군부대 서 열린 수도방위사령부 창설식. 사령관 김진위 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는 5·16의 산물이다. 탄생의 산파역은 5·
-
수녀원에 피신한 장면 총리 '54시간 부재' … 궐기군 진압 무산 … 반전의 기회 사라졌다
1961년 3월 장면 총리(왼쪽)가 이한림 제1군사령관(중장)과 함께 원주 국토건설사업 시공식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 사령관은 한국 최대 규모 실병력인 20개 전투사단을 보유하고
-
박정희 소장 좌우에 박종규 소령, 차지철 대위 … '장면 체포' 임무는 실패 … 권력 이미지는 강렬
5·16 광경은 사진으로 존재한다. 한강 인도교 총격전은 가장 긴박한 순간이다. 하지만 선봉대인 해병1여단의 한강 돌파 사진은 없다. 소장 박정희(당시 44세)와 양쪽에 경호요원
-
네 윈, 첫 쿠데타 땐 민간에 정권 이양 … 2년 뒤 2차 궐기 땐 원대복귀 안 해
이집트 나세르(1952년), 이라크 카심(58년), 태국 사리트(58년), 파키스탄 아유브 칸(58년), 라오스 콩레(60년). 1950년대와 60년대 초, 제2차 세계대전 이
-
JP "거사 빨리 하려 5·16 택일" … 이한림 "군 지휘부 공백 노려"
5월 12일 거사 계획이 새어 나가자 5·16 주체세력은 거사일을 5월 16일로 조정했다. 16일은 화요일이었다. 16일 택일에 대해 김종필 전 총리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
"한국엔 신망·조직력 갖춘 군인 없다" … 청년 장교 자극한 미 상원 보고서
1960년 ‘사상계’ 1월호(사진)는 미국 상원외교위원회에 보고된 한국 정세 분석을 번역해 실었다. 보고 시점은 이승만 정권 말기인 59년 11월. ‘콜론 보고서’로 명명된 정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