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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金東里씨의 삶과 문학
17일 타계한 김동리는 현대문학사의 산증인으로 미당 서정주와함께 한국문학의 수준을 몇십년 앞당겨 놓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찾으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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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의 시인 김우창(명저를 찾아서:2)
◎“님은 왜 침묵하는가”/님의 한계 밝힌 지성/70년대 매료시킨 변증법적 비평서 『님은 갔습니다.아아,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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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여명 몰려 “김대중” 연호/김대중씨 귀국하던날 표정
◎공항주차장 화단위서 즉석 연설/“강한 정부 되려면 강한 야당 필요” 김대중 전 민주당대표가 5개월여의 영국체류를 마치고 4일 오후 귀국했다. 이날 김포공항에는 민주당의 이기택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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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탄생 100주년 강연회 열려
「춘원 이광수 선생 탄생 1백 주년 기념강연회」가 3일 오후 6시 조선일보사 미술관 7층 강당에서 열렸다. 춘원 기념사업회(회장 안병욱)주최로 이어령(전 문화부장관) 김동길(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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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렬『속리! 속리!』 하창수 『담배와 창문』
작가가 작품을 쓴다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독자를 위해서라는 것이 고전적 견해일 터다. 독자가 작품을 읽는 것은 그것을 오락으로 즐기기 위함이라든가, 유익한 정보 얻기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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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교수·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프로진행 TV 라디오 호응 높다
인기작가·교수·의사 등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나운서처럼 매끄러운 진행은 아니지만 별다른 기교 없이 담백하게 TV·라디오프로를 끌어가는 MC로 차츰 자리 잡아가고 있어 눈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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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88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공산당서 “박헌영 밀어내기”/여운형에 신당맡길 움직임… 파벌알력 심각 서울에 도착하여 해방일보 편집국 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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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엔 이 한권의 책을…|전문교수 9명이 권하는 9권의 양서
가을이 깊어간다. 독서주간은 12일로 끝났어도 한시도 책을 멀리할 수 없는 것이 우리생활. 어떤 책을 읽는 것이 과연 유익할까. 각 분야의 전문교수 9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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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선생 기념비제막
◇김윤식 오석 김혁선생독립운동기념비건립위원장은 동기법비 제막식겸 추도시을 18일 상오11시 경기도용인군기흥면구갈리(갈곡)현장에서 갖는다. 오석선생은 만주독립운동의 본산인 신민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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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2)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간송 전형필
간송 전형필은 없어져가는 우리나라 문화재를 수집하여 보존한 공로로 마땅히 국가적으로 표창되어야할 사람이다. 나라가 망함에 따라 모든 것이 없어져 갔지만 그중에도 서화·골동같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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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등 24명 공소장 전문
죄명 가, 내란 음모 나, 내란 선동 다, 계엄법 위반 라, 계엄법 위반 교사 마, 국가보안법 위반 바, 반공법 위반 사, 외국환 관리법 위반 ※이름·나이 직업·죄명 순 ◇피고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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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줄고 중·장편 부쩍늘어
소설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단편이 퇴조를 보이는 반면 중·장편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단편이 위축되고 중·장편이 활발한데는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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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6)제58화 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 비사|50년대"문예"지 전후-조광현(49)
1955년에 창간된「현대문학」지는 매월 한번도 결간된 일이 없이 오늘까지 통권 2백83호까지 나왔다. 햇수로는 23년이 넘었다. 1955년이면 내 나이 35세 때. 지금 회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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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문화계의 기수들
74년 한햇 동안 우리나라의 문화 예술계는 분야마다 독특한 양상을 띠었다. 이러한 양상은 70년대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어떤 면에서는 70년대 한국문화예술의 일반화 된 특성으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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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내가 아는 박헌영(126)-이론진 「아지트」
1949년 봄에 「노력 인민」의 제 일면을 당당하고있던 김장한이 「이론진」이 부책으로 발탁되어 「노력 인민」의 편집국을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 당 중앙최고지도부의 편성은 최고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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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글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이 산견
새해 들어 나타난 소설들 속엔 글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이 도처에서 목격된다. 언어를 수단으로 하여「침묵」을 만들어낸다는 것의 의미를 문학본질논의 차원으로 환원시켜도 좋을 것인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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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우정 80년|강직순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정 총국이 제대로 일도 해보지 못 한 채 문을 닫자 화려했던 모든 계획은 일장 춘몽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직원으로 채용됐던 일인 2명에 대한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