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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조정권 '산정묘지 1'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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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춘수 '西風賦'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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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신현림 '자화상'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 신현림(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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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지하 '형님'
희고 고운 실 빗살 청포 잎에 보실 거릴 땐 오시구려 마누라 몰래 한바탕 비받이 양푼갓에 한바탕 벌려놓고 도도리장단 좋아 헛맹세랑 우라질 것 보릿대 춤이나 춥시다요 시름 지친 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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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박두진 '靑山道'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버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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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江'
마음도 한자리에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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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수영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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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김세원씨 시낭송CD 제작
"맛이 좋다" "똑 떨어진 작품이다" . 미술 작가들끼리 작품을 거론할 때 서로간에 툭툭 던지면서 느낌을 확인하는 말 들이다. 평론가들의 구구한 설명과 달리 핵심에 육박하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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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 아침] 오규원 '한 잎의 여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쪼그만 여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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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 책광장] '애벌레의 모험' 外
◇ 애벌레의 모험 글·그림: 이름가르트 루흐트 김경연 옮김 풀빛, 8천원 햇살이 눈부신 한여름, 배고픈 애벌레가 야생 당근을 찾아 길을 떠난다. 거대한 자동차, 커다란 새 등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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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남주 '사랑'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년을 두고 오는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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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 책광장] '애벌레의 모험' 外
◇ 애벌레의 모험(이름가르트 루흐트 글.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8천원)〓햇살이 눈부신 한여름, 배고픈 애벌레가 야생 당근을 찾아 길을 떠난다. 거대한 자동차, 커다란 새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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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이문제 '노독'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물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랑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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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조용미 '流謫(유적)'
오늘밤은 그믐달이 나무 아래 귀고리처럼 낮게 걸렸습니다 은사시나무 껍질을 만지며 당신을 생각했죠 아그배나무 껍질을 쓰다듬으면서도 당신을 그렸죠 기다림도 지치면 노여움이 될까요 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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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한용운'해당화'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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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조운 '산에 가면'
산에 가면 나는 좋더라 바다에 가면 나는 좋더라 님하고 가면 더좋을 네라만! -조운(1900~47년 월북) '山에 가면' 단풍 든 산만, 어찌 바다만 그렇게 좋겠는가. 눈 오는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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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허만하 '길'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걸었던 바람 부는 길을 이젤처럼 둘러메고 양구를 떠났습니다. 나는 겨레의 향내가 되고 싶습니다. 가야 토기의 살갗같이 우울한 듯 안으로 비바람에 시달린 바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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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고두현 '남으로 띄우는 편지'
봄볕 푸르거니 겨우내 엎드렸던 볏짚 풀어놓고 언 잠자던 지붕 밑 손 따습게 들춰보아라 거기 꽃 소식 벌써 듣는데 아직 설레는 가슴 남았거든 이 바람 끝으로 옷섶 한 켠 열어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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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백석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지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쪼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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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천상병 '강물'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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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종삼 '묵화'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81) '墨畵' 시집 『북치는 소년』이 뒷주머니에서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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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영태 '김수영을 추모하는 저녁 미사곡'
花園(화원)에 가도 마음 달랠 꽃이 없어 나는 徒步(도보)로 그대, 무덤 곁으로 간다 무덤은 멀다 노을 아래로 노을을 머리에 이고 타박타박 駱駝(낙타)처럼 걸어간다 내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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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신동엽의 '山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山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 지어이. 쓸쓸한 마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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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이성복 '서시'
간이 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