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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서도 기념식
【화성=정연복 기자】기미 독립 만세 운동의 60주년을 맞는 3월1일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두렁바위」 마을에서는 당시의 「제암 교회 소타 살해 사건」 피해자 등을 추모하는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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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도
성급한 10대 총선 예비전이 서서히 불붙고 있다. 내년 2월을 선거 월로 보면 아직은 서전단계. 7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 9월 정기국회 등 굵직굵직한 정치 일정이 남아있으나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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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규탄 동심도 궐기
서울한신국민학교(교장박병희·56)학생1천여명은 25일상오10시 동교송암기념관에서 8·18순직 미군장교 추도예배를 갖고 『자유와 펑화를 지키다 희생된 젊은 장교들의 넋을 위로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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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서 타오르는 만행규탄의 열화
8·18판문점북괴군 난동사건에 대한 분노의 불길은 5일째인 23일에도 전국적으로 번져 대한금융단 등 각 사회단체·직장 등에서 규탄궐기 대회가 잇달았다. 또 북괴의 만행이 있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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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불상
최근에 경기도 양평의 어느 논바닥에서 발견된 금동불상은 6세기 이전의 작품이라는 감정결과가 나와 새 국보로 지정되었다. 불상은 석가입멸 이후에도 한참동안은 없었다. 「알렉산더」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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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만송 이기붕씨 묘소이장, 추모예배
고 만송 이기붕씨 묘소이장 및 16주기 추모예배가 28일 상오11시 경기도고양군벽제면 신천지공원묘지에서 열렸다. 망우리에있던 만송묘소를이장한 이날 추보예배에는 손도심·전영배씨등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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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기붕씨 15주기 망우리서 추도예배
전부통령 고 만송 이기붕씨의 15주기 추모예배가 28일 상오11시 서울 망우리 묘소에서 거행됐다. 추모예배는 계도심씨(57·당시 서울신문사장) ,백광하씨(당시 동아일보기자), 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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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공기마신 산책과 사색과 기도|출감 첫날
1년여만에 자유를 누린 첫 일요일-. 구속에서 풀려난 1백25명은 거의 1년만에 따뜻한 자기 집에서 가족들과 친지에 둘러싸여 첫 밤을 얘기로 지새웠으며 맑은 하늘아래에서 풀려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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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의 교외생활관-임간학교
미국등 선진국 여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실시해 오고 있는 임간학교 제도가 몇몇 학교재단에 의해 도입돼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임간학교란 교내 생활관의 한 발전된 형태로 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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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국가변란 기획사건 주요피고인별 공소사실요지
지시 를받고 74년3윌31일 재입국하여 동년4월2일 전시 조천및 동류인 태두 다시 회합, 1·8대통령긴급조치를 비방한 후 동인으로부터 74년4월3일을 폭력봉기의 시점으로 잡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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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로 통일 대안은 없다
김용식 통일원 장관은 3일 『평화적 통일 방법은 남북 대화를 통하는 길밖에 없으며 대화에 대치하는 방안은 없다』면서 『우리가 주장하는 대화에는 아무런 전제 조건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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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수주의의 재침…제2의 창가학회|일연정종 병약자 노려 포교
이에 대해 여러 불교종파의 연합단체인 한국 불교회와 종교학자들은 일련정종이 창가학회와 같은 내용인데 탈바꿈을 해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 한국 불교회는 일련정종의 포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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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애지 보육원장 매영숙 여사|「6·25」때 기도하며 굳은 결심
『자식을 낳아 길러본 사람은 자연히 남의 자식도 귀한 줄을 알게 되는 법입니다. 특히 불쌍한 아이들은 예사로이 보아 넘길 수 없게 되지요. 다행히 나에게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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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극 『두렁바위』공연
순국제암 29선열의 전기극 나소운작· 연출 『두렁바위』(전5막) 가 24일∼26일 수원시민회관과 29일∼31일 인천세계극장에서 공연된다. 순국제암 29선열은 53년 전인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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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교회
【제암리=김창태·이을윤기자】3.1운동 때 일본 헌병들이 29명의 마을사람을 불태워 죽인 제암리 (경기도화성군부남면) 학살사건 현장에 일본인 종교인들의 정성으르 된 속죄의 교회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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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가장 길었던 3일(14)|「6·25」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6월25일 아침부터 28일 새벽 2시반에 한강다리가 폭파될 때까지 서울시경 산하의 5천여 경관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당시의 몇 시경찰관들의 증언을 통해 다시 알아보자. ▲이계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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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속죄가 이것이냐
악독스러운 일본의 침략지배를 벗어나 떳떳한 자유, 독립의 국민이 되고자 3·1독립운동을 일으켰던 그날로부터 50년, 왜적의 군대와 경찰의 총칼앞에 무참히 학살당하고 악형당하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