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고 휴직 중이던 때 (야간)대학원에 다녔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 임신한 거죠. 배 내밀고 회사도 다니고, 학교도 다녔어요. 별문제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나오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임신했을 땐, 아기만 낳으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회사는 휴직했습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은 휴학하고 싶지 않았어요. 휴직했을 때 후딱 해치우고 싶은 생각이 컸거든요. 그런데 그 두 학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3~4시간 간격으로 수유해야 하는 어린 아기를 떼어 놓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악착같이 공부하나 싶은 생각이, 학교에 갈 때마다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휴학하지 않고 학교에 다녔으니, 저는 '지독한' 엄마였네요)

양육자가 되면, 이렇게 욕망이 거세되는 것 같아요. 처음엔 욕망하고, 그 욕망을 쟁취하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엄마 아니면 난 죽을지도 몰라’ 하는 눈빛을 보내는 아기 앞에서 고뇌하고 좌절하죠. 고뇌와 좌절이 끊임없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욕망을 내려놓게 됩니다.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취를 이루고 싶은 욕망이나 공부를 하고 싶은 욕망에서부터 소소하게는 볕 좋은 날 카페 테라스에 앉아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망에 이르기까지, 삶을 지탱하는 무수히 많은 욕망이 있습니다. 이 욕망이 충족됐을 때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죠. 그런데 이 많은 욕망이 작고 가녀린 생명 앞에선 일순간에 개미만큼 작아집니다. ‘나라를 구할 것도 아닌데, 이 작은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존재하기는 한 건가?’ 싶은 거죠.

욕망 앞에서 이렇게 고뇌할 수 있다면, 복 받은 겁니다. 욕망조차 할 수 없는 상황도 많습니다. 아이를 누군가의 손에 맡겨 기르는 비용보다 나의 소득이 적다면, 재고의 여지 없이 우리는 일을 내려놓게 되죠.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여성의 평균 임금은 247만원이었지만, 남성은 그보다 1.5배 많은 371만원이었습니다. 둘 중 한 명이 육아를 담당해야 할 때, 그 한 사람은 대체로 여성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운 좋게 일을 내려놓지 않았더라도 고뇌는 계속되죠. 아이의 발달과 성취 역시 대체로 엄마의 성적표가 되니까요. 그 누구도 엄마를 아이의 발달과 성취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는 죄책감이 시달립니다. 아이가 작은 게, 아이가 느린 게, 아이가 공부를 잘 못 하는 게 꼭 내 탓인 것만 같아서요. 어린이집 시기를 용케 버틴 엄마들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다시 한번 우수수 노동 시장에서 탈락하는 이유일 겁니다.

“욕망해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욕망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요. 한 사람으로서의 욕망과 양육자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혹시 저 같은 양육자 계신가요? 그렇다면 이번 주 레터를 꼭 읽어주세요. 욕망해도 괜찮다더라고요. 이 힘든 시기가 생각보다 금세 끝난다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 포기하지 말고 더 많이 욕망하고, 더 많이 시도해요!


첫인상에선 거리감이 좀 느껴졌어요. 너무 잘난 언니 같았거든요. 첫 창업은 성공적이었고, 최고의 위치일 때 아름답게 정리하고 나와 내로라하는 스타트업을 거쳤습니다. 창업 전에도 해외에서 근무하며 이름을 날렸고요. 그렇게 화려한 커리어를 가졌으면 남편이나 아이는 없을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았어요. ‘이 언니, 대체 안 가진 게 뭐야?’ 싶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잘난 언니도 별수 없는 건가’ 싶어졌어요. ‘여성 양육자의 삶이라는 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육아라는 업무는 사실 무엇인가와 병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육아는 총무에서 인사, 정확하게는 인력자원개발(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 재무에 이르는 종합 경영이니까요. 그런데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다면, 여기저기 펑크가 나고 정신이 없으실 거예요. 굴러는 가는데,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거고요. 괜찮습니다. 그게 정상이에요. 모든 걸 다 가진, 빈틈이라곤 없어 보이는 박지희 코코지 대표도 그랬더라고요.

기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좀 했는데요, 이 말 때문에 쓰기로 했어요.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야심이 있어요. 일을 더 잘하고 싶고, 더 성공하고 싶다는 야심이요. 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그런 야심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저 같은 여성 양육자가 있다면,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하고 위로받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전국의 ‘욕망 엄마’들께 이 기사를 바칩니다!


함께 보면 유익한 기사

“메타인지 키우고 싶다면, 채점 해주지 마라” 리사 손 버나드대 교수

“아이들에겐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 여성 비행사 어밀리아 에어하트


일하는 엄마들이 늘 걱정하는 게 아이와의 애착이죠. 물리적으로 같이 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혹시 애착 관계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걱정하는 겁니다. 이번에 신의진 교수의 ‘괜찮아 부모상담소’를 찾아온 상담자도 애착 문제였습니다.

사실 상담자 분의 고민은 아이의 폭력성이었어요. 특히 이번 상담자 분의 아이는 폭언을 하는 게 문제였죠. 그런데 신의진 교수는 폭언이라는 결과를 낳은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원인은 애착이었고요.

‘회피성 애착’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아이가 양육자를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고 심드렁한 척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가 양육자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냈을 때, 양육자가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회피성 애착으로 아이의 정서 조절력 발달에 지연이 생겼고, 정서 조절과 함께 발달하는 상호 소통에도 지연이 생겼다는 게 신의진 교수의 진단이었습니다. 실제로 상담자의 아이는 질문에 맞는 대답을 못 했는데요, 그게 신의진 교수가 이렇게 진단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신의진 교수는 아이에겐 ‘좀 오버다’ 싶을 정도로 과하게 표현해주는 게 더 좋다고 조언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편인가요? 아이가 여러분께 애정을 표현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더 크게 반응해주세요.


함께 보면 유익한 기사

자해하며 자퇴한다는 아이, 사춘기 반항? 정신병일 수 있어요

부모에겐 욕하면서 남친에겐 다 퍼줘요…19살 딸, 문제는 세살 때


어느덧 5월입니다. 진부하지만, 5월이 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죠. 엄마, 아빠입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더 많이 이해하게 되지만, 정작 그 아이를 키우느라 더 자주 보지 못하는 존재죠. 오늘 그림책은 바로 그 엄마 아빠에 관한 겁니다.

‘엄마’라는 단어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데요. 이 단어만으로 책을 만들 수 있다니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아빠는 또 좀 다른 느낌이죠. 몽글몽글하기보다 든든한 느낌이랄까요? 늘 거기 있을 것만 같은 느낌요.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처음 차 사고를 냈을 때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놀라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거든요. 아빠의 첫마디가 “너 다치지 않았으면 됐다” 였어요. 아빠는 그런 느낌이죠.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계속되어 왔죠. 엄마, 아빠는 돌아가실 겁니다. 우리도 죽을 테고요. 하지만 아이의 삶을 통해, 그 아이의 아이 삶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될 겁니다. 아이도 언젠가 그 의미를 이해하는 날이 오겠죠. 우리가 그랬듯이요.

매주 꼭 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추천하고 리뷰하는데요, 오늘 그림책은 유독 더 그렇습니다. 아이와 함께 보면서, 여러분의 엄마,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함께 보면 유익한 기사

"자, 자, 울지않기다" 죽음 준비하는 할머니, 손녀와 마지막으로 한 일

아기 갈매기 기르는 고양이 "그냥 사랑하는 거야"…거장의 동화


“양육자가 필요한 모든 콘텐츠, hello! Parents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다음 주에도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금요일엔 hello! Parents!


hello!Parents 뉴스레터 구독 페이지를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