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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겐 욕하면서 남친에겐 다 퍼줘요…19살 딸, 문제는 세살 때

중앙일보

입력 2022.03.11 06:00

만 19살, 16살 두 딸을 둔 엄마입니다. 큰 딸 소진이(가명)에 대한 걱정 때문에 상담을 신청하게 됐습니다. 소진이는 본인의 감정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지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 던지고 말을 더듬습니다. 부모에게 욕을 하기도 해요. 다른 사람과 대화도 잘 못할 정도로 순진하면서도, 겁 없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통해 남자들을 만나고요. 첫째 방이 지저분해 청소해주다가 피임도구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남자와의 관계를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고민입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제 기억에 소진이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 욕을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또래에 비해 더딘 면이 있어요. 하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소진이를 정말 예뻐했어요. 주말에 아이를 따로 불러 맛있는 음식도 사줄 정도였거든요. 한편으론 자격지심 때문에 엇나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동생이 큰 아이에 비해 뭐든 월등히 잘하거든요. 소진이 정말 통제 불가능한 아이인 걸까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진이가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경우 어렸을 때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요, 소진이는 어렸을 때 누가 키웠나요?”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이지민씨(가명)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소진이가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 그러니까 사회성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겁니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서 ‘선긋기’를 제대로 못하는 게 부실한 애착관계로부터 발생하는 대표적인 문제라는 것이죠. 신 교수는 “만 세 돌까지가 애착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지민씨와 신의진 교수의 상담은 지난 1월 17일 줌을 통해 3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는 이지민씨의 동의를 얻어 상담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아이의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양육자라면, 혹시 영유아기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지 고민해보세요.

부모에겐 욕하면서, 타인에겐 잘하는 아이 

신) 소진이가 기분 안 좋을 땐 정확히 어떻게 표현하나요?

이) 둘째의 경우엔 또박또박 대화가 되는데, 첫째는 말이 평소보다 더 어눌해집니다.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욕을 하며 물건을 집어 던져요.

신) 가족들에게 과격한 태도를 취한 게 혹시 언제부턴가요?

이) 중학교 올라갔을 때로 기억합니다.

신) 그럼 중학교 이전엔 어떤 아이였나요?

이) 우리 집안 첫째로 태어나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소진이를 정말 예뻐했어요. 친구들이랑 놀이공원에 갈 때 소진이를 데려간 유치원 선생님도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은 카카오톡 배경에다가 소진이 사진을 올리고, 주말엔 스파게티랑 피자 먹으러 가자고 할 정도였어요.

신) 선생님들은 소진이의 어떤 점이 예쁘길래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이) 인사도 잘하고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대답을 잘한다고 해요. 집에선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이니까 안 믿기죠.

신) 그랬던 아이가 왜 변한 걸까요?

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한 것 같아요. 아이가 좀 느린 편이거든요. 이 무렵 갑자기 욕을 하길래 ‘너 왜 그러니?’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 욕을 안하면 왕따 당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선 쓰지 말고,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만 한두 마디 정도 쓰라’고 했는데, 그게 버릇이 된 것 같아요.

문제의 열쇠는 애착 형성에 있었다  

신) 좀 더 과거로 가볼게요. 아이는 누가 키웠나요?

이) 맞벌이라 아이들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주로 키웠어요. 주중엔 외가에서 할머니가 키우고, 주말에 집으로 데려와 제가 돌봤어요.

신) 언제부터 외할머니에게 소진이를 맡기셨죠?

이) 출산 후 3개월 정도 제가 보다 복직했어요. 그 뒤로는 쭉 아이들 외할머니가 키우신 겁니다.

신) 아이가 주말에 주 양육자가 할머니와 엄마로 바뀔 때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이) 할머니랑 안 떨어지려고 했어요. 집에 가기 싫다고요.

신) 아이가 집에 와서는 어떻게 지냈나요?

이) 저는 아이한테 최선을 다했어요. 책도 읽어주고, 게임도 같이 하고요. 남편도 가정적인 편이고요.

신) 엄마가 집에서 책도 읽어주고, 놀아줘서 재미있다 싶으면 할머니 집 안 가려고 버티고 난리가 나거든요. 소진이는 어땠나요?

이)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는 친정 어머니를 엄마로 보긴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아기 때 잠깐 그러다 말았어요. 좀 크고 나서는 할머니랑 안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유치원도 잘 다니고, 별다른 문제가 있진 않았어요.

신) 제가 보기엔 소진이 문제의 경우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 같아요. 세 돌까지가 애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요. 아이가 믿고 의지하는 주 양육자는 명확하게 존재해야 하거든요.

이) 양육자와의 애착관계에 문제가 있다니 믿기지 않아요. 아이들 외할머니가 사랑을 많이 주셨거든요.

신) 주중에 할머니댁, 주말엔 부모님 집을 오가면서 주 양육자와의 분리를 반복해서 경험한 게 문제 같아요. 주말엔 주중 주 양육자인 할머니와 떨어져야 하고, 주중엔 주말 주 양육자인 엄마와 떨어져야 하잖아요. 주 양육자와의 꾸준한 감정 교환과 공감, 놀이 같은 게 이뤄져야 하는데, 매주 이게 끊어지는 상황이 반복된 거죠.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런 선택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차라리 어머니께서 주말에 할머니댁에서 함께 생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유아기 애착관계, 아이의 평생 행복 좌우 

이) 주 양육자와의 애착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부모에게 욕을 하고 감정 조절을 잘 못하나요?

신) 영유아기 애착관계가 뇌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에게 욕하고 감정 조절을 못하는 건 얼핏 애착관계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때 애착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아이가 평생 행복하게 살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할 정도니까요.

이) 하지만 아이는 학교 생활에 큰 문제가 없었어요. 선생님들도 아이를 정말 예뻐해주셨고요.

신) 아이 성격이 좋아서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소진이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썼다고 하셨죠? 제 생각엔 소진이가 다른 아이들 보다 선생님에게 더 잘 하려고 애썼을 가능성이 높아요. 사랑 받고 싶어서요. 불안정한 애착관계로 문제를 겪은 아이들은 종종 상대에게 지나치게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아이들은 상대가 조금만 잘해주면 그 사람에게 딱 달라 붙습니다. 사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선생님이 잘 해주더라도 선을 긋거든요. 그런데 소진이는 그걸 잘 하지 못한 겁니다.

이)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도 그런 건가요?

신) 마찬가지에요. 어머니는 남자와의 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시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친구가 잘 해주기 때문에, 더 단단한 애착관계를 위해 잠자리를 갖는 거죠. 문제는 소진이에게 단단한 애착관계가 부재하다는 겁니다.

소아기 때 불거진 문제, 그 시절을 치유해야 

이) 소진이는 벌써 19살입니다. 성인인데요, 이미 손 댈 수 없는 상황일까요?

신) 소진이의 마음은 어쩌면 6살 아이보다 어릴 수 있어요. 3살만 돼도 타인의 심리 상태나 감정을 이해하는 역지사지가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소진이는 영유아기 애착관계에 문제가 생기면서 사회성을 담당하는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고요. 양육자 입장에선 아무리 알려줘도 도통 변하질 않으니 벽에 대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느끼실 거에요.

이)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신) 성인이 돼 치료하는 게 상당히 어렵긴 합니다. 이런 경우엔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소아정신과에서 치료 받는 게 훨씬 효과적이에요. 부모는 아이를 다시 키운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이에게 상대의 마음이라는 게 있다는 걸 경험하게 해줘야 해요. 같이 장을 보러 가고, 음식 만들어 먹으며 마음을 나누는 거죠. 아기 때 장난하듯이 놀아주는 거예요. 아마 소진이는 정리도 혼자 하라고 하면 못할 거예요. ‘엄마가 도와줄 테니 우리 같이 치워볼까?’ 하면서 함께 해주세요. 6살 아이 가르치듯이요. 부정적인 말은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반발만 할 거거든요. 칭찬하고 공감해주세요.

이) 남자와의 관계를 쉽게 생각하는 건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신) 잔소리는 금물입니다. 뭐라고 하면 아이는 입을 다물어 버릴 겁니다. 그러면 더 큰 문제예요. ‘남자친구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 봤니? 엄마 아빠만큼 그 친구가 널 영원히 사랑해줄 수 있을까?’라고 다독이듯 부모의 마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제가 말씀 드린 대로 1년 정도만 꾸준히 해보세요. 그럼 소진이도 마음의 문을 열고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기 시작할 겁니다. 애착과 뇌 발달, 사회 인지의 상관관계에 대해 아는 부모가 얼마나 되겠어요. 어려운 이론인데요.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지금부터라도 공부해야겠죠? 응원하겠습니다, 어머니.

신의진 교수의 총평 및 솔루션
① 내 아이의 사회성이 떨어진다면, 세 돌 전 애착 형성에 혼란을 겪은 건 아닌지 돌아보세요. 애착이 만들어지려면 주 양육자가 아이를 꾸준히 돌보며, 아이의 행동에 공감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② 어린 시절 애착관계는 뇌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애착 형성이 잘된 아이는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죠. 반면 그렇지 못했을 땐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습니다.
③ 성인이 됐어도 소아기 때 불거진 문제는 그 시절을 치료해야 합니다. 성인일지라도 마치 어린 아이 다루듯 하며, 하나하나 경험시켜줘야 해요. 소아기 때 원인을 둔 증상은 소아정신과에서 치료받는 게 효과적입니다.

☞아이는 소중합니다. 그런데 삶은 불확실하죠. 때문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누구에게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일 겁니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협이 얹어졌습니다.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가 hello! Parents와 함께 [괜찮아,부모상담소] 시즌 2를 연 이유입니다. 신의진 교수는 지난 1월부터 아이에 대한 고민을 가진 양육자를 비대면으로 직접 만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말 못할 육아 고민, 여러분도 갖고 계시진 않은가요? 신의진 교수의 [괜찮아,부모상담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사연 신청은 hello! Parents 홈페이지를 구독한 뒤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메일(helloparents@joongang.co.kr)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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