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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떼는 말, 평생 쓰는 말…'엄마' 이 한 단어로만 쓴 그림책

중앙일보

입력 2022.04.29 06:00

강경수 작가의 『나의 엄마』. 출처=그림책공작소,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강경수 작가의 『나의 엄마』. 출처=그림책공작소,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어느덧 5월입니다. 5월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죠. 엄마·아빠입니다. 좀 진부한 듯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강경수 작가의 그림책 『나의 엄마』,『나의 아버지』를 집어 든 이유입니다.

엄마

보기만 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단어입니다. 『나의 엄마』는 짧지만 강렬한 한 단어, ‘엄마’에 새겨진 수많은 감정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상당수 아이들이 처음 말을 시작할 때 흔히 하는 말은 '엄마'다. [출처=그림책공작소]

상당수 아이들이 처음 말을 시작할 때 흔히 하는 말은 '엄마'다. [출처=그림책공작소]

책은 간결합니다. 책 전체에 등장하는 단어는 단 하나 ‘엄마’뿐이죠. 글자 옆에는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를 불러본 순간,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엄마에게 걸어가던 순간, 길 건너에서 우연히 엄마를 발견했던 순간, 내 일기장을 몰래 보는 엄마를 발견한 순간, 결혼식장에서 엄마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순간,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의 거친 손을 잡은 순간….

그림과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때마다 말 속에 눌러 담았던 감정이 되살아납니다. 설렜고, 반가웠고, 서운했고, 부끄러웠고, 고마웠고, 슬펐고…. 작가는 서체에 변화를 주어 그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같은 글자여도, 페이지마다 다른 감정이 읽힌 이유입니다.

『나의 엄마』에는 '엄마'라는 두 글자만 쓰여있다. '엄마'를 12번 되뇌이다보면 울컥해진다. [출처=그림책공작소]

『나의 엄마』에는 '엄마'라는 두 글자만 쓰여있다. '엄마'를 12번 되뇌이다보면 울컥해진다. [출처=그림책공작소]

한참을 들여다본 그림도 있습니다. 서너살 무렵입니다. 한창 엄마가 좋을 나이죠. “엄마엄마엄마…” 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엄마를 불러 대던 그때가 그리웠습니다. 뜨끔했던 장면도 있습니다. 사춘기, 날카롭고 앙칼지게 쓰인 ‘엄마’를 읽는데, 왜 이렇게 미안한 걸까요. 그 시절 엄마의 마음이 이제야 헤아려지나 봅니다.

엄마의 마지막 손을 잡을 때 힘없이 흐느끼며 '엄마'를 부른다. [출처=그림책공작소]

엄마의 마지막 손을 잡을 때 힘없이 흐느끼며 '엄마'를 부른다. [출처=그림책공작소]

엄마는 늙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가 되죠. 삐뚤빼뚤했던 ‘엄마’라는 글자도 어른스럽게 변하고요. 그리고 엄마는 세상을 떠납니다. 엄마가 된 아이 곁엔 치맛자락을 당기는 아이가 생기고요. 엄마는 죽었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보는 시간은 짧았지만, 긴 여운이 남았습니다. 책을 읽었는데, 들렸고 보였습니다.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와 그때마다 고개를 돌려 바라봐 주는 엄마의 얼굴이요. 그래서였을까요. 엄마라는 글자를 읽기만 했는데, 울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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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수 작가의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 출처=그림책공작소,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강경수 작가의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 출처=그림책공작소, 일러스트=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엄마 이야기하는데, 아빠 이야기가 빠지면 섭섭합니다. 작가도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2016년 같은 날 동시에 두 권의 책을 냈거든요. 『나의 엄마』의 짝꿍, 『나의 아버지』가 두 번째 주인공입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아버지’는 엄마만큼 애절하게 불리진 않습니다. 아빠는 언제나 무엇이든 척척 해결하는 슈퍼맨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애절하게 보다 씩씩하게 불러야 합니다.

『나의 아버지』에서도 아빠는 영웅입니다.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에게 아빠는 존재만으로도 빛이 납니다. 자전거를 탈 때, 수영을 배울 때, 연을 날릴 때, 야구를 배울 때, 언제나 시작의 순간에 아빠가 있습니다.

아빠는 늘 아이의 곁을 지킨다. [출처=그림책공작소]

아빠는 늘 아이의 곁을 지킨다. [출처=그림책공작소]

아이는 아빠에게 배우고, 아빠보다 잘하려고 애씁니다. 고군분투하는 아이의 곁을 지키는 건 아빠의 몫입니다. 아이는 아빠에게 묻습니다. “계속 내 뒤에 있을 거지?”

아빠의 보호 속에 아이는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리고 점점 아빠를 잊습니다. 마치 날 때부터 모든 걸 잘했다는 듯이요. 아이가 아빠를 다시 찾은 건 자만에 취해 넘어지고 깨진 뒤입니다.

아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을 때, 할아버지가 된 아빠가 아이의 뒤를 지키고 계셨다. [출처=그림책공작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을 때, 할아버지가 된 아빠가 아이의 뒤를 지키고 계셨다. [출처=그림책공작소]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 자리에는 할아버지가 된 아빠가 서 있습니다. 아이는 잊었지만, 아빠는 계속 그 자리를 지켜 온 겁니다.

“이제는 나보다 네가 뭐든지 잘하는구나”.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어른이 된 아이에게 아빠가 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슈퍼맨이 탄생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아이와 아빠의 일상이 한 컷 그림으로 실려 있습니다. 아빠 등에 업히고, 양팔에 매달리고, 발 위에 올라서서 춤추고, 목욕하고, 목말을 타던, 아빠와 함께했던 순간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던 우리 슈퍼맨 아빠, “잘 지내고 계시죠?”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이와 아빠의 일상이 한 컷 그림으로 펼쳐져 있다. [출처=그림책공작소]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이와 아빠의 일상이 한 컷 그림으로 펼쳐져 있다. [출처=그림책공작소]

강경수 작가는 2011년 지구촌 아이들의 불행한 현실을 그린 그림책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논픽션 부문 라가치상을 받았습니다. 짧은 텍스트와 한 컷 그림으로 감성을 자극하기로 유명한 작가죠. 여백이 많아서일까요? 아이들도 그의 책을 좋아합니다. 여백을 아이의 상상으로 채울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는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그의 책을 통해 배웁니다.

강경수 작가의 책은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5월만 되면 전국의 엄마·아빠들이『나의 엄마』,『나의 아버지』를 찾나 봅니다. 엄마·아빠의, 할머니·할아버지의, 그분들의 엄마·아빠 이야기를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어서겠죠. 오늘 퇴근길엔 현관 문을 열며 엄마·아빠를 크게 불러봐야겠습니다. 내년 5월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어떤 마음일지 상상해보면서요.

·한 줄 평 : 엄마, 아빠라는 단어가 가진 힘은 강했다. 부모님에 소홀해진다 싶을 때 습관적으로 꺼내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

·5월 가족이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돼지책』 온갖 가사일을 떠안은 엄마와 손 하나 까닥 안하는 가족들의 이야기. 어린이 책으로는 처음으로 여성의 노동 문제를 꺼내든 영국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작.
『엄마가 미운 밤』 부모 자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책. 가족 간 상처주는 말, 치유하는 말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추천 연령 : 글밥이 적어 3살 정도만 되어도 함께 읽기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그림과 글자 안에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려면 7세는 넘어야 할 것 같아요. 아이와 함께 책을 펼치고, 엄마·아빠의 엄마·아빠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엄마·아빠와 함께 나눈 감정이 아이에게는 또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새겨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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