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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갈매기 기르는 고양이 "그냥 사랑하는 거야"…거장의 동화

중앙일보

입력 2022.01.14 06:00

업데이트 2022.03.02 13:43

한 줄 평 : 엄마 고양이는 아기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무사히 가르쳐줄 수 있을까?
함께 읽어보면 좋을 환경을 다룬 논픽션 책
『남극이 파괴되고 있다』 일본의 사진작가가 남극에서 직접 담아낸 환경 파괴의 현장.
『바다를 병들게 하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이 바다의 생물과 환경을 어떻게 훼손할까?
추천 연령 : 초등학교 4~6학년 무렵의 어린이와 읽길 권합니다. 이 나잇대엔 동화책뿐 아니라 논픽션 책을 읽어 내야 합니다. 추천하는 환경 관련 논픽션 책들을 함께 읽어보세요.

둘째 아이를 입양한 지인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는지 물은 적이 있죠. 경외심을 담아서요. 그의 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를 낳아 보니, 어느 것 하나 예상할 수도, 계획할 수도 없었어요. 어떤 아이가 나올지 알 수 없죠. 가족이 된다는 건 그저 받아들이는 거예요. 아이가 크든 작든, 순하든 까다롭든 말이죠. 입양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를 보면서 그 지인이 떠올랐습니다. 항구에 사는 고양이 소르바스가, 자신과 친구들이 키운 아기 갈매기에게 이런 말을 했거든요.

“우리들은 그냥 너를 사랑하는 거야. (중략) 우린 우리와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지. 우리와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런데 너는 그것을 깨닫게 했어.”

소르바스와 친구들이 아기 갈매기를 키우게 된 데엔 사연이 있습니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를 향해 비행하던 갈매기 켕가는 독일 엘바강 어귀 북해에서 정어리 사냥을 하러 바다로 활강했다가 기름띠에 갇힙니다. 온 힘을 다해 기름띠에서 탈출한 켕가는 항구로 날아 소르바스 앞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부탁하죠. 자기가 알을 낳으면, 그 알을 먹지 말고 부화할 수 있게 지켜달라고요. 그리고 새끼가 태어나면 나는 법을 꼭 알려달라고요. 당황한 소르바스는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약속합니다.

고양이가 갈매기를 기른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소르바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죠. 그리고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소르바스의 친구들도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도 잘 알잖아. 부두 고양이 한 마리가 한 약속은 고양이 전체와 관계있는 일이란 사실을.”

얼떨결에 아기 갈매기를 기르게 된 소르바스(가운데), 동네 건달 고양이들이 갈매기를 괴롭히자 위풍당당하게 나타나 갈매기를 구해준다.

얼떨결에 아기 갈매기를 기르게 된 소르바스(가운데), 동네 건달 고양이들이 갈매기를 괴롭히자 위풍당당하게 나타나 갈매기를 구해준다.

부두 고양이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건 명예와 관련된 일입니다. 아기 갈매기를 돌보는 건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는 일인 셈이죠. 하지만 ‘엄마(아기 갈매기는 고양이 소르바스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고 여린 존재를 돌보며 고양이들은 알게 됩니다. 자신들이 아기 갈매기를 사랑한다는 걸 말입니다.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기 갈매기를 통해 그게 가능하다는 걸 배운 것이죠.

세풀베다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입니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역시 자신의 아이들에게 인간이 자연을 훼손해서 벌어지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어 쓰게 되었다고 말했죠. 책 속에서 인간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고양이들은 인간이 일부러 나쁜 일을 많이 하기도 하거니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건 결국 인간이었습니다. 고양이들은 ‘인간과 인간의 언어로 소통하지 않는다(사실 고양이는 할 수 있습니다!)’는 금기를 깨고 고양이를 키우는 한 시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시인의 도움으로 아기 갈매기는 마침내 바다를 향해 날아가죠. 몇 번의 실패를 딛고 말입니다. 그 순간 엄마 고양이 소르바스는 말합니다.

“아기 갈매기는 이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오직 날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이죠.”

아기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시인을 찾아간 소르바스. 시인의 도움으로 아기 갈매기는 날 수 있게 된다.

아기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시인을 찾아간 소르바스. 시인의 도움으로 아기 갈매기는 날 수 있게 된다.

아기 갈매기가 자신을 떠나는 것으로서 고양이의 약속이 완성되는 결말은 의미심장합니다. 고양이에겐 그 어떤 다른 것이 아닌 성숙한 자신이 남을 뿐이죠. 다른 존재를 존경하고 애정하고 아끼는 행위가 숭고한 건 바로 이것 때문일 겁니다.

그림책·동화책 리뷰를 하며 “초등 고학년을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성인의 독서로 넘어가기 위한 심화 독서 시장이 작다는 불평도 들었고요. 그런데 정작 출판사 관계자들은 “4학년까지만 책을 읽는다. 그 이상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소연합니다.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다고요. 많은 어린이가 5학년쯤 되면 학업에 치여 독서 시장을 떠나고, 그때까지 남아있는 어린이들은 읽을 책이 마땅치 않은 현실 때문일 겁니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가 더 소중하게 느껴는 건 그래서겠죠. 초등 고학년 아이를 기르는 양육자라면 아이와 함께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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