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의 마켓 워치] 짧게 끝나는 ‘양적 완화’ 잔치…또 도진 스페인·그리스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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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투자자들은 어리둥절하다. 모처럼 펼쳐진 양적 완화의 파티가 너무 빨리 막을 내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일본까지 가세해 유동성 살포를 공언하지 않았던가. 증시는 기업실적의 악화에 억눌려 한계가 따르더라도, 원유나 금 같은 실물자산의 가격은 꽤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미국의 1, 2차 양적 완화 때가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주식은 물론 석유·금속에서 곡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자산시장이 반짝 랠리를 뒤로하고 지지부진한 트랙으로 복귀하는 모습이다. 미국 3차 양적 완화의 화력(주택담보부 증권 월 400억 달러 매입)이 집중된 미 주택시장만 회복 흐름을 이어가는 정도다.

 뭐가 문제일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는 그래도 경제의 토양에 씨앗과 영양분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올드 노멀(과거 표준)’의 관성이었다. 여기에 유동성의 비를 뿌리자 싹이 좀 돋아났다. 하지만 지금의 토양은 워낙 척박하다. 아무리 물을 줘도 생명이 움트지 않는다.

 유럽의 상황은 다시 악화일로다. 그리스 국민들이 더 이상 긴축을 못 참겠다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의사와 판사들까지 시위에 가세했다. 긴축 합의를 겨우 이끌어낸 연립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연정이 무너지면 그리스는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이는 곧 유로존 탈퇴의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페인도 심상치 않다. 극심한 실업과 생활고는 급기야 카탈루냐 등 지방정부들의 분리 독립운동까지 야기했다. 스페인이 10월 중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시장은 다시 불확실성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두 나라 정부가 긴축을 밀어붙인다고 공언하긴 했다. 스페인은 27일 내년 예산을 400억 유로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그리스 연립정부도 향후 2년간 115억 유로의 긴축을 단행하기로 했다. 시장은 일단 안도했다. 하지만 실행 여부는 알 수 없다.

 경제위기는 신흥국가들로도 빠르게 확산 중이다. 중국·인도 등 거대 신흥국가들이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는 허물어졌다. 경착륙을 안 하면 다행인 처지다. 장기 저성장과 큰 변동성, 초저금리와 자산 디플레 등 ‘뉴 노멀(새 표준)’이란 놈이 세상을 평정한 듯하다.

 뉴 노멀의 먹구름은 과연 언제나 걷힐까? 장기 호황 끝의 버블 붕괴로 세계 경제가 황폐해졌던 대표적 사례로는 1929년 대공황과 1970년대 대침체를 꼽을 수 있다. 두 번 다 10년 세월이 걸렸다. 경제의 토양이 지력을 회복하는 데 걸린 자연치유 시간이다. 이번에도 ‘잃어버린 10년’을 각오해야 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근거다. 이번 위기가 2008년 시작됐으니 아직 터널의 중앙 근처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각국이 하기 나름이다. 지혜를 모아 협력하면 탈출의 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일단 내년에 일말의 희망이 싹틀 듯하다. 미국과 중국, 한국까지 새 정부가 출범하는 효과다. 유로존도 리더십의 변화가 기대된다. 새 지도자들이 내놓을 경제 회생의 액션플랜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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