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람 잡는 국토대장정 그냥 놔둘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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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달 한국소년탐험대라는 한 업체가 초·중·고교생 56명을 데리고 떠난 국토대장정은 구타와 성추행으로 얼룩진 청소년 학대 대장정이었다. 울릉도에서 묵호항으로 향하던 여객선에서 경찰에 구조를 요청한 이모(16)양의 온 몸은 나뭇가지로 맞아 피멍과 긁힌 상처투성이였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폭언에다 성추행까지 경험해야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지옥을 체험했다고 말할까.

 부모들은 이런 일이 벌어질 때까지 이 단체와 아이들을 인솔한 탐험대장 강모씨에 대해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강씨가 2005년 참가 학생을 폭행해 1년2개월 징역을 산 경력도 있으며, 지난해 8월 유럽탐험대장정 행사에서도 중3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학생들의 주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자녀를 그의 손에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전과 21범이 아이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주고, 대학 진학 때 유리한 인증서를 준다는 미끼를 내걸며 위험천만한 대장정을 벌여도 행정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업체 설립 때 당국에 신고절차도 없고, 강사 자격·교육프로그램·시설 등의 규제도 없다. 물론 성범죄자 취업 제한과도 관계가 없다. 성범죄자가 이벤트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극기훈련이란 명목 하에 아이들을 끌고 다니며 학대해도 부모들은 그냥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개인사업자가 영리 목적으로 벌이고 있는 청소년 체험 캠프나 국토대장정 행사를 지금처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청소년 지도 자격을 갖춘 적격자가 행사를 맡도록 최소한 자격 제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여성가족부가 구청이나 수련관 등 공공기관의 청소년 수련활동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인증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인증 확대가 당장 어렵다면 업체들이 교육 프로그램이나 인솔자·강사들의 범죄 경력 정보를 스스로 공개토록 해 부모들의 걱정이라도 덜어줄 고민을 해야 한다. 아이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