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권재진 법무장관 ‘대법관 낙마’ 책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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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법치주의와 사회 정의의 수호자인 대법원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국회에 임명 동의를 요청한 대법관 후보자가 사퇴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어처구니없는 사태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 재발을 막아야 한다.

 그제 김병화(전 인천지검장) 대법관 후보자는 “저로 인해 대법원 구성이 지연된다면 더 큰 국가적 문제”라며 자진 사퇴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 아들 병역 특혜, 저축은행 수사 개입 등의 의혹이 잇따른 탓이다. 그 과정에서 여야가 김 후보자 임명동의를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지난 10일 이후 대법관 4인의 공백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제청권자인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있다. ‘검찰 몫 대법관’이란 이유로 적격 여부를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제청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김 후보자를 추천한 권재진 법무부 장관, 그리고 후보자를 철저히 검증하지 못한 정진영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검찰 수사에서 불거졌던 저축은행 관련 의혹이 대법관 후보 추천 과정에서 문제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법조계에서는 세 사람이 경북고, 서울대 법대 동문이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학연(學緣) 탓에 검증이 부실해졌다는 의심이다. 추천 과정의 부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태도도 문제다. 권 장관은 온갖 문제가 드러난 지난 24일에도 “그 정도 하자라면 대법관 후보로서 크게 손색이 없다”며 김 후보자를 두둔했다.

 대법원은 원점에서 다시 추천·제청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이번엔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를 대변할 인물을 고름으로써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원칙이 무너진다면 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엔 균열이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