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4·11 민심은 정치권에 대한 경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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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9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최근 민간인 불법사찰 등에 따른 현 정권 심판론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제1당의 지위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새누리당의 승리라고 속단하기 어렵다. 민심은 사실상 정치권에 경고장을 던졌다.

 최근 몇 달 여론의 흐름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의 승리는 주목할 만하다. 대통령 사저 파문에 이어 현역 의원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폭로하면서 한나라당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정당정책도 ‘경제민주화’ 등 진보적 성격을 강화했다. 그러나 지난달 터진 민간인 불법사찰 폭로가 다시 악재로 작용했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민주당에 제1당의 자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주 여론조사를 할 때까지도 새누리당은 민주당에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1주일 만에 확실한 제1당의 자리를 되찾은 것은 분명한 정치적 승리, 특히 선거를 이끈 박근혜 위원장의 고군분투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내용을 꼼꼼히 뜯어보면 새누리당의 승리를 축하하기엔 이르다. 무엇보다 먼저 새누리당의 의석이 상당히 줄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서울에서의 참패다. 서울은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이다. 젊은 표들이 많은 곳이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여론 주도 기능이 활발한 곳이다. 그래서 서울에선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 지역에서 야권이 보여준 선전도 새누리당에겐 경고다. 이 지역에서 야당이 차지한 의석 수는 많지 않지만 득표를 따져보면 문재인 바람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도 새누리당은 야권연대(민주당과 진보당)보다 4% 부족하다.

 야당의 경우 의석 수에서 한나라당에 졌지만 18대에 비해 의석 수를 많이 늘렸다. 이번 총선이 새누리당의 완승이라 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야당의 약진은 야권연대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최근 여론의 흐름을 감안해 본다면 야권의 승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특히 지난 선거에서 강세를 보였던 충청과 강원 지역의 참패는 뼈아프다.

 야권연대 전략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들이 야당에 대한 기대를 좌절시켰다. 일단 민주당 내부에서 공천 논란이 심각했다. 진보당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성급하게 지역구를 나누면서 전화여론조사를 조작한 사건이 터졌다. 특히 선거 막판 ‘나꼼수’ 김용민의 막말 파문은 결정적이었다. 불과 1주일 전까지 앞서갔던 야권이 추락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이었다. 민주당이 ‘MB정권 심판론’에 매몰돼 자신의 허물에 너무 관대했다. 여론조사 조작을 일으킨 진보당 이정희 대표나 막말 파문을 일으킨 김용민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진보 특유의 도덕적 우월성에 빠져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셈이다. 아무리 현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이 높아도 야당의 이런 문제점이 용서되는 것은 아님이 확인됐다. 민주당 리더십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민심이 어느 쪽에도 확실한 지지를 보내지 않은 것은 ‘두고 보겠다’는 표심의 유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8개월을 지켜본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적인 한 표를 던지겠다는 속마음을 읽어야 한다. 새누리와 민주당은 물론 야권연대의 주역인 진보당도 이런 유권자의 경계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19대 국회 운영 과정에서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벌써 대선을 의식한 여야 간의 기싸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절대 다수당이 없는 상황에서 정당 간의 과열 경쟁은 국회를 마비시킨다. 지금은 대통령도 임기 말이다. 국회가 중심을 잡아야 나라가 굴러간다. 4·11 민심이 사이 좋게 나눠준 의석처럼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원숙한 국정운영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적표는 12월 대선이 될 것이다. 부릅뜬 유권자의 눈을 잊어선 안 된다.